이 기사는 2024년 06월 19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정기간 배당을 유보하면 어떻게 될까요? 매년 평균 4000억~5000억원을 정부에 배당한 것을 기반으로 계산해 본다면 3년 동안 배당을 유보할 경우 1조5000억원 정도의 현금증자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부 앞 배당 유보'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다.국책은행의 수장이 공식 석상에서 먼저 정부 앞 배당 유보에 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데 매번 증자를 요구하는 게 적절한지 자문하는 과정에서 생각한 방안이라고 했다. 실제로 나라 살림을 한눈에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 4월 말 누계 기준 62조6000억원 적자다.
그러나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이 자금을 활용하는 데에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다. 그만큼 눈치를 보며 증자를 요구해야 할 정도로 독단적이고 허투루 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기관 수장으로서 정부 주머니 사정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지만 문제의식의 요지는 기형적이고 비효율적인 자본 순환 구조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정부와 산은 사이에는 배당→출자 형태의 자본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있다. 산은은 매년 정부 앞 배당을 하고 자본적정성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책금융 여력 확대가 필요할 경우 정부의 지원에 기댄다. 배당만큼 순이익을 내부에 유보할 수 없어 대응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본적정성이 쉽게 흔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매번 정부 출자에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비효율이 초래되는 셈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상태를 벗어나려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추고 자체적으로 이익잉여금을 더 쌓아 자본 규모를 확대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배당 유보다.
정책금융기관이 배당 유보로 재무역량을 확보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든 사례는 이미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재건은행(KfW)이다. KfW는 배당 금지 등 정책금융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한 환류 장치를 둔다. 이익 유보를 통해 재원을 확충하고 이를 다시 정책금융에 투자해 효과성을 제고한다.
배당 유보로 선순환 구조를 만든 KfW를 중심으로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이 독일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중요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은 독일과 비슷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경제성장의 정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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