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7월 01일 07: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다녀본 음식점들을 분석하면 크게 두 형태다. 가격은 세도 대표 메뉴로 승부를 보는 식당, 흔한 맛·저렴한 가격의 메뉴들만 수십 가지인 식당. 전자가 부담스러워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후회로 끝났다. 몇 벌 없지만 품질은 으뜸인 옷을 진열해둔 가게, 수백 벌의 싸구려 옷을 내놓은 가게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음식과 옷 같은 생필품을 기업 거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크게 보면 비슷하다. 대기업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계열사 정리에 속도를 내면서 여러 비주력 사업부와 계열사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있다. 그렇게 정리한 메뉴판이 점점 길어지면서 SK그룹 같은 경우에는 반도체·배터리 외엔 자산을 다 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롯데그룹과 카카오그룹 등 다른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롯데그룹은 세븐일레븐 ATM사업부와 롯데케미칼 자회사 LC타이탄을 매물로 내놨다. 빙산의 일각일 뿐 롯데하이마트와 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부 등 여러 계열사들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매각 후보로 물망에 오른다. 카카오그룹 역시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세나테크놀로지와 카카오VX 외에도 여러 매각 대상 후보를 추리는 모양새다.
카브아웃 딜의 홍수 속에서 눈을 반짝일 법할 FI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주관 계약을 따기 위해 중간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자문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다. 살만한 게 없다는 것. 우량 자산은 내놓기 싫어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자산만 수두룩하게 내놓으니 투자자들 입장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납득할 수준은 어딜까. 알짜 자산을 매각하되 후순위를 많이 깔아주거나 그나마 관심 있을 여러 자산을 통으로 묶어 파이어 세일하거나 방안은 다양하다. 다만 이것저것 다 내놓고 투자자들을 찔러보기만 할 게 아니라 납득 가능한 합리적 제안을 하라는 것이 복수 IB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자문사 없이 살생부만 만들어 IB들에 뿌리고 간 보는 방식만으로는 매각이 어렵다는 얘기다. 매각이 어려우니 합병에 돌입한 SK그룹의 사례가 일례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고정된 가격이 있지만 시장에서 장을 볼 때는 흥정이라는 협상의 영역이 존재한다. 상인과 고객 간 팽배한 줄다리기 끝에 값을 깎거나 덤을 얹어주며 균형을 맞춘다. M&A에도 협상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러나 현재 대기업들이 내놓는 긴 메뉴판만으로는 FI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현금 확보가 시급하다면 희생도 필요한 법.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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