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대해부]<바람의 나라>로 움튼 넥슨의 씨앗②[설립]1994년 12월 출범, 김정주·송재경 의기투합…3년의 우여곡절 겪어
황선중 기자공개 2024-07-18 10:08:36
[편집자주]
국내 게임업계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양상이다. 세 회사는 10년 가까이 '삼국지'처럼 국내 게임시장을 삼분하며 각축전을 벌여 왔지만 최근에는 넥슨 홀로 질주하는 모습이다. 더벨은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 넥슨만의 성장스토리와 지배구조, 성장전략, 키맨 등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7월 16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4년 12월 어느 겨울날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에 자리한 열평 남짓한 오피스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스물일곱살의 김정주가 회사를 차렸다. 당시 태동하던 인터넷을 활용해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회사 이름도 차세대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를 의미하는 넥슨(NEXON)으로 지었다.김정주가 선택한 차세대 온라인 서비스는 게임이었다. 여러 사람이 PC로 동시 접속하는 온라인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송재경(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김정주가 전반적인 경영을, 송재경이 게임 개발을 책임졌다. 당시 송재경은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가 김진의 만화 <바람의나라>를 떠올렸다.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그때까지 온라인게임이라는 개념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서도 흔치 않았다. 온라인게임 <바람의나라>를 완성하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돈은 얼마나 필요한지 예상조차 어려웠다. 어디 물을 곳도 없었다.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넥슨의 자본금은 점점 말라갔다.
"무슨 돈으로 게임을 만들 건데"
김정주는 임시방편으로 웹에이전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업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구축해 주는 일이었다. 당시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기업마다 온라인 홈페이지 구축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던 때였다. 넥슨은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아시아나항공, SK 등과 같은 굴지의 기업 온라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웹에이전시 업계에서 넥슨의 명성은 금세 높아졌다. 당시 김정주와 송재경처럼 서울대 학사, 카이스트 석사 출신 개발자는 많지 않았다. 우수 인력으로 무장한 넥슨에 일이 몰렸다. 자연스럽게 넥슨의 유동성 숨통도 트였다. 김정주는 웹에이전시 사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기반으로 <바람의나라> 개발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니 또다른 문제가 터졌다. 넥슨 출범 1주년이던 1995년 12월 송재경이 갑작스럽게 넥슨을 떠난 것이다. 1년 가까이 개발하던 <바람의나라>가 갑작스럽게 풍전등화 위기에 놓였다. 누군가는 빈자리를 채워야만 했다. 김정주는 서울대 출신의 정상원(현 띵소프트 대표)을 대체자로 영입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웹에이전시 사업을 담당하던 인터넷 사업부의 불만도 점점 커졌다. 인터넷 사업부가 벌어들인 현금 대부분이 <바람의나라>를 담당하는 게임 사업부로 흘러가는 구조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반대로 게임 사업부도 회사의 정체성이 웹에이전시 사업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넥슨의 정체성은 도대체 뭐야"
1997년 결국 인터넷 사업부를 책임지던 핵심 인물 3인방이 모두 넥슨을 떠났다. 바로 나성균(현 네오위즈홀딩스 의장), 박진환(네오위즈홀딩스 전 대표), 김병관(현 웹젠 의장)이다. 모두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인재들이었다. 나성균과 김병관은 김정주와 송재경처럼 카이스트 대학원 과정까지 밟았다.
서울대 경영학과 3인방의 공백을 채운 것은 현대자동차 홍보팀 출신 윤지영·이재교(현 엔엑스씨 대표)다. 넥슨이 현대자동차 온라인 홈페이지를 구축하던 당시 연이 닿았다. 두 인물은 대기업에서 쌓은 각종 경험과 역량, 네트워크를 넥슨에 이식했다. 학생티가 풀풀 나던 개발자들의 동아리 같았던 넥슨을 하나의 회사로 정비했다.
이제 남은 유일한 숙제는 <바람의나라> 흥행이었다. 1996년 4월 정식 출시하긴 했지만 가시밭길 투성이었다. 인터넷 인프라 문제가 컸다. 당시 인터넷은 전화망 기반이었다. 인터넷 속도도 느렸고 비용도 비쌌다. 국내에서 전화망으로 온라인게임을 돌리는 이용자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았다. 넥슨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1997년 들어 전국적으로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렸다. 국내 PC방 산업도 때마침 활성화됐다. 인터넷 이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내 최초 온라인게임 <바람의나라>로 이용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람의나라>는 그렇게 오랜 우여곡절을 끝냈다. 국내 게임업계 역사 첫 페이지에 넥슨이 적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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