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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오디오, 이재용의 하만 [thebell desk]

김장환 산업2부장공개 2024-08-27 07:55:22

이 기사는 2024년 08월 16일 07: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오디오 사랑은 유별났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10대 시절 처음 접한 오디오에 푹 빠졌다고 한다. 1960년대 와세대 대학에서 수학하던 20대 시절에는 '덕후' 수준까지 갔다. 당시 일본은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미국과 영국 오디오를 대량 수입해 유통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오디오를 사들여 분해하고 조립하는 취미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의 오디오 사랑은 삼성 총수가 된 뒤로도 여전했다. '최고의 음질'을 내는 제품을 구하는데 집착했다. 집무실 한켠에 영국 B&W 스피커와 매킨토시 앰프를 뒀다. 삼성동 저택에는 프랑스 포칼(Focal)의 하이엔드 스피커 제품 그랜드 유토피아 EM을 구비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스피커와 앰프를 '수집광'처럼 모았다고 한다. '가성비'를 외치며 '대륙의 실수' 제품을 사들이는 서민들 눈에는 '과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음향기기 업체와 브랜드들이 군집한 오디오 전문그룹 하만 인수를 결정했을 때 이와 비슷한 시선이 업계에 많았다. 2016년 거래 대금 80억달러, 당시 한화로 무려 9조3400억원에 달하는 돈을 투입했다. 이 회장이 2014년 심근경색으로 와병 중인 가운데 경영 전면에 섰던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이 처음으로 결정한 딜이다. '오너가의 취미 생활에 9조원 넘는 돈을 썼다'는 조롱 섞인 말들이 일부 있었다.

그럴만한 이유도 사실 있었다. 하만은 인수된 후 머지 않은 시점에 적자를 봤다. 그것도 대규모다. 인수 3년만인 2020년 7354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냈다. 삼성전자 연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된 적자다. 영업권 손상차손이란 악영향까지 미쳤다.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실질 가치보다 4조5000억원 가량을 더 들여 샀다가 본 낭패였다. 하만 인수가 잘못된 선택으로 비춰질만 했던 배경이다.

수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하만은 더 이상 돈 먹는 하마가 아니다. 2023년 매출 14조4000억원, 순이익 90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익도 아닌 순이익률이 6.2%다. 올해는 역대 최고 실적을 다시 경신할 것으로 기대된다. 상반기 매출은 6조8200억원, 순이익은 5600억원이다. 전년 대비 2.5%,. 95.9% 늘었다. 하만의 오디오 사업부는 기존 삼성전자 사업부들의 각기 실적을 뛰어넘을 조짐을 보인다. 그야말로 '백조'가 됐다.

사실 아는 사람 눈에는 보였겠지만 하만 인수는 삼성의 전장사업 진출 수년의 고민이 마침내 빛을 본 순간이다. 스마트폰 다음의 미래 먹거리를 전장으로 보고 2015년 12월 전장사업팀을 신설했지만 보다 구체적인 사업체가 절실했다. 벤츠, BMW, GM, 폭스바겐, 도요타 등 글로벌 시장 메이커 생산 차량에 스피커를 공급하는 하만은 제격이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커넥티드 카 2025 비전'은 하만 없이 꿈도 못꿀 목표였다.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는 이제 다시 대형 M&A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도 넘보는 영역들이 다소 의아하다. 올 들어 미국 DNA 분석 장비기업 엘리멘트에 2억77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했다. 존슨콘트롤즈 냉난방공조 사업부 인수전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동종기업 레녹스와 올 5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미국 공조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번에도 본연의 사업 경쟁력 강화 차원과는 거리가 먼 분야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뛰어든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냥 어줍잖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만 선택이 보여준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제2 도약은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과감한 결단 덕에 시작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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