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지금]뚝심 있게 밀어붙인 HBM, 삼성 끌어내린 무기됐다③엔비디아 손잡고 비상, 다음 주역은 'SSD' 유력
김도현 기자공개 2024-10-23 13:02:02
[편집자주]
1983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SK하이닉스는 존폐 직전까지 갔지만 기사회생했다.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것이 반전 계기였다. 최태원 회장의 지지 아래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덕분에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함께 '메모리 빅3'로 부상했다. 2010년대 말 전방산업 호황 덕에 퀀텀점프 했고 SK가 재계 2위로 도약한 기회도 제공했다. 다만 최근 들어 위기감도 고조되는 중이다. AI 시대 들어 위기에 처한 그룹의 백기사 역할을 해주고 있으나 산업적 측면의 우려도 큰 상태다. SK하이닉스의 현 상황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1일 13: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1년 10월20일, 지금으로부터 3년 전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 HBM3 D램 개발>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때만 해도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생소한 시기였다. 지금은 인공지능(AI) 메모리로 통용되는 HBM이지만 'HBM D램'으로 불리는 등 용어조차도 통일되지 않았었다.같은 해 2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인공지능 HBM-PIM 개발> 소식을 전했다. HBM과 연산이 가능한 프로세싱 인 메모리(PIM)를 결합한 것이다. 여기에는 2세대 HBM(HBM2)이 쓰였다. 이 제품은 HBM보다는 PIM에 무게 중심이 있다. 이후 삼성전자는 한동안 HBM 관련 자료를 내지 않았다.
다소 상반된 전략을 펼친 양사의 현주소는 엇갈렸다. 2023년 '챗GPT'를 계기로 AI 서버가 급속도로 확장됐고 이 과정에서 HBM 활용도가 대폭 커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등장 당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4세대 HBM(HBM3)이 SK하이닉스를 메모리 리딩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했다.
◇1세대 제품 개발 이후 10년 만에 '대박'
HBM은 말 그대로 대역폭이 넓은 메모리다. 광범위한 대역폭으로 한 번에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AI 구동 시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기 때문에 HBM이 병렬 연산에 능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짝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같은 능력을 갖추게 된 건 D램 여러 개를 쌓은 덕분이다. 각 칩에 미세한 구멍을 뚫고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을 통해 복수의 D램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09년 TSV 기술 개발팀을 설립했고 2013년 말 1세대 HBM 개발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가 먼저 스타트를 끊긴 했지만 메모리 기술력에서 우위를 보였던 삼성전자가 HBM2부터 앞서 가기 시작했다.
2019년 SK하이닉스가 3세대 HBM(HBM2E) 세계 최초 개발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삼성전자에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즈음 삼성전자는 HBM 사업에 힘을 뺐다. AI 확산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등 마땅한 응용처가 발굴되지 않으면서다. 안팎으로 어수선했던 상황도 한몫했다.
이전까지 HBM은 공정 난도가 높아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고객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22년 말 챗GPT 등장으로 AI 시장 판도가 뒤집혔다. HBM 프로젝트를 지속하던 SK하이닉스에 기회가 왔고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듬해 4월 24기가바이트(GB) HBM3, 5세대 HBM(HBM3E) 등을 경쟁사보다 빠르게 개발하면서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불황으로 적자 기조가 이어진 와중에 HBM이라는 한 줄기 빛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결국 4분기 흑자전환하면서 HBM 효과가 미미하지 않음을 증명해냈다.
올해 들어서는 자타공인 엔비디아와 함께 AI 최대 수혜주로 꼽혔다. HBM 수요가 급격하게 늘면서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2025년 물량까지 '완판(솔드아웃)됐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예정대로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하면서 SK하이닉스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마이크론이 뒤따르고 있지만 양과 질 측면에서 아직 SK하이닉스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달에는 36GB를 구현한 12단 HBM3E 양산에 돌입했다. 역시나 업계 최초다. SK하이닉스가 HBM 관련 '세계 최초 타이틀'을 독식하면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후발주자에 그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선도업체 자리를 지키는 부분은 큰 의미가 있다. 할당 물량이나 단가 등에서 SK하이닉스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영향이다. 이에 따라 경쟁사들은 SK하이닉스보다 적은 주문량, 낮은 가격으로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HBM3E 품질 검증(퀄테스트) 통과 여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진 배경이다.
이제는 6세대 HBM(HBM4)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메모리 빅3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관련 설계를 마치고 2025년 하반기부터 HBM4 양산에 돌입할 전망이다.
HBM4부터는 변수가 많아진다. 기존에 SK하이닉스는 'MR-MUF(Mass Reflow Molded Underfill)',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TC-NCF(Thermo Compression Non Conductive Film)'라는 패키징 기술을 적용해왔다. 그동안 SK하이닉스가 기술력에 우위를 보인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진다.
HBM4를 기점으로 솔더볼이나 범프 등 연결 소재 없이 칩과 칩을 붙이는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 가능성이 제기된다. 초기에는 MR-MUF, TC-NCF가 쓰이겠으나 16단 HBM4부터는 하이브리드 본딩을 병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7세대 HBM(HBM4E)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HBM4부터 베이스 다이 제작을 TSMC와 협업한다. 최선단 공정이 필요해지면서 파운드리 선두주자 TSMC와 손을 잡은 것이다.
또한 패키징에 필요한 설비도 승부를 가를 요인이다. SK하이닉스는 한미반도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일본 신카와 등으로부터 조달했다. 앞으로는 한화정밀기계, 싱가포르 ASMPT 등이 가세한다. 장비사와의 협력도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가면 더욱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사기 논란' 솔리다임 인수, 반전의 계기로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중에서도 D램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양대산맥인 낸드플래시는 업계 5~6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고자 SK하이닉스는 승부수를 띄웠다. 인텔 낸드사업부(현 솔리다임) 인수가 대상이다.
솔리다임은 장기간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SK하이닉스의 아픈손가락이 됐다. 일각에서는 '인텔에 사기당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랬던 솔리다임은 올 2분기 순이익을 내면서 반등했다. AI 시대에서 HBM에 이어 기업용(e)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급부상했는데, 솔리다임의 장기가 어우러진 결과다.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도 eSSD 주문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 시너지가 본격화한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는 외주 생산하던 낸드 컨트롤러도 내재화 중이다. 추후 낸드 사업도 HBM으로 퀀텀점프한 D램 사업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긍정론이 확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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