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이재용 회장 2년]글로벌 톱레벨 영업 전개, HBM·파운드리 성과 관건[반도체]젠슨 황, 협력사 다변화 행보…전영현 부회장, 조직문화 개선 중책
김경태 기자공개 2024-10-25 07:51:40
[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10월 27일 회장이 됐다. 4대그룹 오너 경영자 중 가장 늦었다. 이제 취임 2년차다. 기대와 우려는 여전하다. 가장 큰 우려는 사법리스크다. 올해 2월 삼성물산 관련 합병 소송의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에서 곧바로 항소하고 새로운 소송도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 반도체사업 위기를 맞이했다. 그룹 재건과 M&A를 통한 덩치 불리기 과제로 나아가야 하는데 기반이 돼야 할 영업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 그 속에서 지배구조 재편과 인사도 마쳐야 한다. 이 회장 2년차를 맞이한 삼성을 6개 키워드로 돌아보고 향후 행보를 가늠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2일 14: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의 위기론 근간에는 반도체사업 부진이 있다. 진원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다.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30년 넘게 지켜온 메모리 반도체 왕좌를 내줄 가능성이 큰 상태다. 여기에 글로벌 경쟁사인 마이크론, 중국업체들의 약진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사업과 관련해 보인 행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글로벌 빅테크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와 미팅이다. 공판이 없는 일정을 활용해 메모리·비메모리 사업을 막론한 영업에 나섰다.
하지만 톱레벨 영업 효과는 아직 가시화되지 못했다.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지 못했고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서 대규모 수주 소식도 전해지지 않는다. 수율 향상이 관건이다. 신임 DS부문장의 의사결정 권한 강화와 조직 문화 변화 등도 과제다.
◇DS부문 위기, 젠슨 황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톱레벨 영업'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위기는 1차적으로 HBM 부진 탓이다. HBM은 2015년 처음 개발됐는데 당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처음부터 경쟁사에 크게 밀렸던 것은 아니다. 변곡점은 2019년 HBM 연구개발팀 해체였다.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HBM 연구개발을 이어가면서 AI 랠리에 제대로 올라탔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2017년 2월 구속됐다. 삼성그룹 창사 이래 총수가 구속된 첫 사례였다. 2018년 석방 이후에도 공판이 지속됐다. 다시 구속돼 사법리스크가 극대화되는 것을 방어하는 게 최대 과제일 수밖에 없었던 시기다. 이 회장은 2021년 재구속됐고 2022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았다.
그 후 2022년 11월 반도체산업을 뒤흔들 결정적인 사건이 생긴다.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며 생성형 AI 바람을 일으켰다. 과거 구글의 알파고와는 차원이 다른 파장을 일으켰고 특히 반도체산업에 파급력이 컸다. 대규모 정보처리를 위해 엔비디아가 만드는 GPU(그래픽처리장치)는 최적의 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엔비디아의 고공행진이 시작되면서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도 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반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상대적으로 늦게 HBM 경쟁력 강화에 나서면서 SK하이닉스를 추격하는 형국이 됐다.
이 회장은 생성형AI로 인한 반도체산업이 격변하던 시기에 삼성물산 합병 관련 소송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1심만 약 2년간 진행됐다. 작년 11월 결심공판 전까지 한 달에 2~3번 꼴로 공판에 참석했다. 올 2월 삼성물산 합병 관련 소송 1심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다만 이 회장이 개인사에만 매달려 있었던 건 아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가 될 수 있는 글로벌 빅테크의 수장들과의 미팅을 다수 가졌다. 작년 5월 미국 동부와 서부 출장에서 약 20여명의 글로벌 기업 CEO와 만났던 게 대표적이다.
특히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난 사실이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당시 삼성이나 엔비디아에서 공식 발표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회장과 황 CEO가 만난 사실은 실리콘밸리 일식당 '사와스시'의 홈페이지에 사진이 게재되면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당시 AI반도체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 DS부문의 메모리, 파운드리 등에서 고객사로 분류되는 곳의 CEO들과 만났다. 작년과 올해 출장 과정에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 등과 미팅을 가졌다.
◇젠슨 황의 희망고문, HBM·파운드리 수율 향상 절실…전영현 부회장 '중책'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HBM를 SK하이닉스에 의존하는 게 아닌 수급처를 다변화하는 게 필요하다. 이 때문에 황 CEO는 꾸준히 삼성전자에 긍정적인 언급을 했다. 그는 올 3월 엔비디아의 연례행사인 GTC 2024에서 삼성전자 부스에 들렀다. 당시 삼성전자 HBM3E에 '젠슨이 승인했다(Jenson Approved)'는 친필을 남겨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한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황 CEO가 SK하이닉스(HBM), TSMC(파운드리)와 가격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삼성전자를 향한 지속적인 '희망 고문'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황 CEO와 이 회장이 만난 사와스시 식당의 주인이 황 CEO라는 얘기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황 CEO가 이 회장과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굴욕에 가까운 표현을 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이 올 5월 DS부문장을 전격 교체하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 정도다.
현재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 외에 마이크론에서도 HBM3E를 공급받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삼성전자와 경쟁사의 격차가 내년부터 급격하게 커질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와 반도체업계에서 쏟아지는 중이다.
여기에 파운드리에서의 적자가 지속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애플, 퀄컴 등 파운드리 주요 고객사들이 TSMC를 선택하면서 입지 개선에 어려움이 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자체 AP인 엑시노스 역시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MX사업부의 선택을 받지 못해 고민이 커지고 있다.
다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반도체업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삼성전자의 포지셔닝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HBM은 SK하이닉스, 파운드리는 TSMC가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수율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HBM4에서의 반격을 성공시키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메모리와 파운드리 기술력이 결합돼 '킬러 응용'이 가능한 시기가 올 것으로 전망해왔다. 이 경우에도 결국 기술력이 관건이다.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이달 초 잠정실적 발표 이후 공개한 사실상의 '사과문'에 밝힌 조직문화 변화도 중요하다. 반도체업계와 삼성 전직 고위관계자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무너진 배경으로 DS부문의 의사결정 구조와 조직문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결국 전 부회장이 돌파해야 할 과제도 적잖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전자 내부에도 서울 최상위 대학 출신의 라인이 형성돼 있는데 DS부문에 역시 이 같은 파벌이 존재한다는 후문이다. 전 부회장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유력 라인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의사결정에도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노조 문제도 있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 취임 이후 노조와 직접 만나며 정면돌파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또 산업 재해 등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변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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