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08년 08월 01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년전쯤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는 투기등급(BB0) 회사채 3년물을 7.2%에 매수했었는데… 최근 은행채(AAA) 3년물 금리가 7%에 육박하네요"
"과거에 한 항공사가 발행한 채권을 서로 매수하기 위해 입찰에서 물량확보 경쟁을 하다가 회사채시장의 큰 형님격인 특정은행한테 밀려서 결국 못 샀거든요, 그런데 최근 그 항공사가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하는데 매수하겠다는 기관이 없어 발행에 애를 먹다가 결국 물량을 줄이고 만기를 짧게하고 나서야 비로소 발행이 되었습니다"
모두 채권시장 운용담당자의 말이다. 회사채시장의 가격(국고채 대비 스프레드)과 분위기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2006년말 우량회사채의 기준인 A-급 회사채 3년물 평균금리는 5.23%(스프레드는 0.31%p)였지만 2008년 7월말 현재 동 금리는 7.25%(스프레드는 1.48%p)까지 올랐고 투자등급의 하한선인 BBB-급 회사채 3년물 평균금리는 7.32%(스프레드는 2.40%p)에서 9.97%(스프레드는 4.21%p)로 오른 상황이다.
물론 각 금융기관의 조달비용 예를 들면 은행권의 수신금리, 자산운용사의 채권형펀드 제시수익율, 보험사의 예정이율 등이 함께 올랐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회사채 투자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불과 1년 반전과 비교해서 크게 증가한 셈이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대하여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위험프리미엄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2007년 이후 불과 1년반 정도의 기간 동안에 회사채 시장에 과연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회사채가 일반적으로 기준금리인 국고채수익율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발행되는 관행을 생각하면 회사채의 상대적인 가격은 국고채 대비 가산금리, 즉 신용 스프레드의 변화로 파악할 수 있다. 신용 스프레드는 이론적으로는 발행기업의 부도위험(Default Risk)과 비지표물인 회사채의 유동성위험(Liquidity Risk)을 반영하게 될 것이며 기준금리인 국고채 금리가 변하듯 금융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회사채 역시 하나의 재화라고 가정한다면 회사채의 가격 역시 경제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만나서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결정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때 회사채 발행물량도 동시에 결정이 된다.
회사채 수요는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지만 구체적으로는 (1) 투자기관의 유동성 사정, (2) 신용위험에 대한 선호도(신용위험에 대한 회피성향)의 변화, (3) 기업들의 Credit 펀더멘탈에 대한 현황 및 전망 등을 주요 결정요인으로 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회사채 공급은 (1) 기업들의 재무정책 및 사업전략, (2) 영업현금 및 자산매각등을 통한 내부잉여자금창출능력, (3) 설비투자 및 운전자금등 자금소요, (4) 기존 회사채의 차환발행 수요, (5) 직접발행시장의 대체상품 존재여부(예를들면 은행권 사모사채)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회사채 발행데이터를 보면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늘고 공급은 감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모회사채의 발행물량은 수요 증가폭과 공급 감소폭의 크기에 따라 늘고 줄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회사채의 가격은 급등했었다. 반면 2007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의 데이터를 통해서는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면서 가격이 급락했으며 특히 비우량등급의 경우 수요의 감소폭이 더 커서 물량감소와 가격하락이 동시에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2007년 이후 왜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게 된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2004년 이후 은행권의 주도하에 지속되어 온 크레딧 시장의 성장이 단기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2004년 이후 넘치는 유동성과 경제주체의 위험회피성향 완화로 크레딧 부문의 높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회사채가격은 강세(스프레드 축소)를 지속해 왔다. 외형경쟁에 몰두하던 은행권의 좋은 먹잇감으로 포착된 사모사채의 인수는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사모사채라는 강력한 대체상품의 등장은 직접금융시장의 회사채 가격을 특히 BBB급의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재계서열 향상을 목표로 한 일부 그룹들을 중심으로 LBO방식의 M&A가 유행처럼 번지고 돈 구하기가 쉬워진 중견 주택건설업체들은 "지방으로, 중대형평형으로"를 외치며 사업확장의 부푼 꿈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른바 풍부한 유동성이 금융기관의 외형경쟁과 위험회피성향의 완화를 통해 크레딧 섹터로 대거 유입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레딧과 관련된 유가증권의 가격은 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급이라는 기본적인 시장원리를 초과하여 펀더멘털 보다 과다하게 유동성이 공급된 실물부문(대표적으로 건설업종)에서 부실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그동안 유동성 공급의 주역임을 자임했던 은행등 금융기관들이 높아진 예대율로 추가적인 신용창조에 힘겨워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물론 미국 서브프라임사태의 그림자효과가 상황반전의 부족함 없는 촉매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동성은 있으되 위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면서 금융기관들이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높은 위험프리미엄)를 들이대며 Credit섹터로 돈을 밀어넣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인플레이션, 내수침체등 악화되는 경영환경하에서 기업들의 Credit펀더멘탈 훼손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위험프리미엄을 높이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되어 현재도 진행형인 크레딧 스프레드의 확대추세는 꼭 집어 말할 수 있는 신용사건(Credit Event: 예를들면 대우사태, SK글로벌사태, 카드채사태) 없이 신용순환주기(Credit Cycle)가 반전되어 나타나는 국내시장 최초의 경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채권시가평가제도 도입 이후 국내시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오랜기간에 걸쳐 전등급, 전섹터에서 무차별하게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된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설사 장기화 되더라도 그 효과가 특정섹터(예를 들면 카드채)에 국한되었던 경험만 있다. 그렇게때문에 역설적으로 현재의 상황이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크레딧 시장의 성숙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제대로 된 순환주기(Cycle)상에서 음지(신용경색기)와 양지(신용팽창기)를 모두 겪어낸 경험을 가진 시장이 성숙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느 금융기관의 대출을 이용해 줄까"를 고민하던 입장에서 어느순간 믿고 있던 크레딧 라인이 없어지는 입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금융시장 환경이 조변석개하는 상황속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 만으로도 기업 재무정책의 성숙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카드채사태 이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유동성이란 괴물에 이끌린 탐욕스러운 성장의 끝은 고통의 시작"이라는 교훈을 시장참여자들이 한번 더 되 새겨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도 의미가 클 것이다.
우리 회사채시장은 과거 여러차례의 신용 사건을거치며 필연적으로 역량을 강화해 왔다. 특히 금융기관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크레딧 애널리스트들로 대변되는 인적자원의 힘이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이제 우리 회사채시장도 위기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식을 알고 있으며 위기속에서도 옥과석을 구분해 내는 분석역량도 갖추어졌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점들은 회사채시장이 이번에는 적어도 동네축구 하듯 공 하나만 쳐다보면서 같은 방향으로 몰려다니는 식의 대응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회사채시장에 처음으로 찾아온 신용순환주기(Credit Cycle)의 반전이라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시장참여자들(발행기업과 투자자, 인수기관)의 성숙한 대응을 통해 시장발전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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