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09년 07월 02일 18: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들어 신용평가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안정화시키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지난 3월 이해상충 금지, 평가와 영업활동의 분리, 불공정행위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신용정보업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신용평가 회사들은 신용평가 업무의 독립성 및 신뢰성 강화를 위한 제도 정비를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신용평가의 신뢰성 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의가 분석기법, 평가절차 등 평가업무 자체보다는 오히려 신용평가의 의뢰구조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평가사 선정이 피평가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의뢰구조로 말미암아 신용평가의 신뢰성이 원천적으로 훼손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신용평가 회사들은 신용평가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간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영위사업간 Firewall을 구축하는 한편, 신용등급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규율을 강화하여 왔고 최근에는 평가와 영업활동을 분리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평가기업의 의뢰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지는 의뢰구조는 투자자로 하여금 신용평가의 신뢰성에 대한 의혹을 품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심사받는 측에서 심사위원을 선임할 경우에 제기되는 공정성 시비에 견줄만 하다.
의뢰구조에 기인하는 신뢰성에 대한 의혹을 없앨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투자자가 신용평가의 Quality가 높은 신용평가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신용평가 수수료를 투자자에게 부담시키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투자자가 신용평가를 의뢰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투자자지급 모델(Investor-pays model)은 1900년대초 미국에서 신용평가가 도입된 이후 1960년대까지 시행되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신용등급 이용자의 무임승차(Free rider) 문제가 대두되면서 피평가기업이 평가의뢰를 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지금의 발행자지급모델(Issuer-pays model)이 정착된 것으로 파악된다.
수수료의 Free rider 문제는 신용등급이 공공재로 인식되고 그 이용범위가 확산되면서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된데 따른 것으로 수수료 징수의 기술적인 어려움에 기인하고 있다. 투자자에 의한 신용평가 의뢰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조건인 셈이다.
투자자지급모델은 Free rider 문제뿐만 아니라 신용평가의 이해상충문제를 해소하는데 있어서도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투자자에 의한 신용평가 의뢰가 이루어진다손 치더라도 발행업무의 수주를 위하여 금융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신용평가사의 선정에 있어 피평가기업의 의사가 배제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다. 신용평가사 선정에 대한 피평가기업의 의사가 투자자를 통하여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투자자들 역시도 이해상충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경우 보유 채권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채권가격의 하락으로 말미암아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신용등급의 공정성 보다는 관대한 신용등급을 원하게 될 것이다.
채권 보유 여부에 따라 신용평가에 대한 니즈(Needs)가 달라질 수 있고, 특히 투자자가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피평가기업이 평가사를 선택하는 경우와 유사한 이해상충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의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에 의한 의뢰구조로 회귀하기 보다는 현재의 의뢰구조가 지니는 신뢰성 훼손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신용평가의 의뢰구조 개선과 관련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감사인 선정제도에서 힌트를 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신용평가와 회계감사는 구매자와 소비자가 다르고 이해관계자간의 욕구가 서로 상충된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감사법에 의하면 상장법인은 외부감사인의 선정시 회계감사 계약을 3년 단위로 맺도록 하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 3년간은 동일한 외부감사인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감사의견이 적정의견이 아닌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으로 나올 경우 해당 외부감사인의 동의없이는 외부감사인을 교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외부감사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시행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신용평가의 의뢰구조 개선 방안으로서 계약기간의 장기화와 신용평가사 교체 제한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신용평가는 피평가기업이 신용평가가 필요한 유가증권에 대한 신용평가 의뢰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신용평가가 필요한 경우 평가받는 기업의 의사에 따라 신용평가가 진행되고 평가회사의 선택은 별다른 제약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의뢰구조는 피평가기업이 보다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신용평가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용평가의 일관성과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신용평가의 신뢰성에 대한 의혹의 상당부분이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신용평가 계약의 기간을 장기화시키는 방안은 피평가기업의 자유로운 신용평가사 선택이 야기할 수 있는 공정성 문제를 완화시키는 동시에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하여 보다 심도있는 분석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의뢰구조에서 기인하는 피평가기업의 Cherry Picking 문제의 해결과 신용평가의 Quality 제고를 동시에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신용평가 결과에 따른 신용평가사의 교체를 제한하는 것이다. 외부감사인 선정에 있어 감사의견에 따른 외부감사인 교체를 제한하고 있는 제도는 감사의견에 대한 불만이 외부감사인 교체로 이어질 경우 외부감사인의 독립된 의견표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이를 신용평가에 적용한다면 신용등급을 하향한 신용평가사의 교체를 제한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평가대상기업이 평가사를 선택하는 구조하에서 신용평가사로 하여금 신용등급 Coverage 또는 수수료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독립적인 의견을 표명하게 하는데 있어 상당히 의미있는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신용평가에 대한 불필요한 의혹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피평가기업에 의한 무분별한 신용평가사의 교체는 신용평가의 Quality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신용평가사에 대한 기업의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고 이를 통한 투자자 보호에 충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신용평가사의 교체를 어느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신용평가 의뢰구조는 신용평가의 독립성 보장과 이를 통한 투자자 보호라는 큰 원칙보다는 적용의 편의성에 치우쳐 있다. 의뢰구조에서 비롯될 수 있는 신뢰성 훼손의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최근의 문제제기는 의뢰구조의 개선을 통하여 이해상충 가능성을 차단하고 신용평가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같다.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차제에 제로베이스에서 충분히 공론화할 가치가 있는 이슈이다. 어떠한 대안이건 간에 큰 틀은 신용평가사의 독립적인 의견 표명을 보장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용평가의 특성과 현실적인 적용가능성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하여 효과적인 대안이 마련되고 이러한 대안들이 신용평가사의 끊임없는 연구개발활동과 결부되어 신용평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돈독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소개]
[학력 및 경력]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1994 한국 P&G
1995 ∼ 한국기업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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