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9년 11월 12일 10: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스팩 1호 탄생이 눈 앞에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이 스팩 설립의 첫 사례가 되는 것이다. 금융선진국 일본,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에 개방적인 홍콩도 아직 스팩 도입 검토 단계다.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에 시장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성장 단계인 우리나라에 이미 성숙한 미국 자본시장의 스팩 제도를 도입하는 게 이르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위원(38. 사진)은 시장의 우려에 대해 "스팩 제도 도입의 적기는 따로 없다"며 "오히려 스팩이 한국 자본시장 발전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이 스팩의 도입 효과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유학생활 동안의 경험 덕분이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미국에서 증권법을 공부하며 스팩이 정착해서 활성화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그의 석·박사논문 역시 스팩에서 영감 받은 부분이 크다. 석사논문은 스팩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우회상장'에 관한 내용이었으며, 박사논문에서는 스팩의 발기인 중 하나인 '벤처캐피탈'에 관해 다뤘다.
김 연구위원이 귀국해 자본시장연구원에 입사한 것은 지난해 초. 때마침 한국거래소는 스팩 도입을 검토하며 연구자문기관을 물색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김 연구위원은 그 때부터 자본시장연구원을 대표해 거래소와 함께 스팩 도입의 필요성과 효과, 한국형 스팩 제도 설계를 주도해왔다.
스팩, 자본의 선순환 이끌 것
김 연구위원은 "스팩을 통해 투자자금의 순환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특히 비상장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의 경우 투자자금 회수 시점을 크게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탈의 주요 수익원은 투자회사를 기업공개(IPO)시킨 뒤 얻는 상장차익이다. 하지만 그 수익을 얻기까지 길게는 5~6년을 기다려야한다. 국내 IPO 시장 규모가 워낙 협소해 상장할 수 있는 기업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장 시점이 계속 미뤄지다 결국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벤처캐피탈들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비상장기업의 주식이 거래되는 장외시장마저 발전돼 있지 않다.
그는 "벤처캐피탈이 스팩의 발기인, 혹은 투자자로 참여하며 보다 쉽게 투자 수익을 창출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팩의 출현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증권사가 의무적으로 발기인으로 참여해야하는 한국형 스팩의 구조에서는 그 간 주식과 채권투자만을 해왔던 증권사 역시 자기자본투자(PI)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이처럼 벤처캐피탈과 증권사의 자금력이 합쳐져 거대 투자 시장을 형성하면 앞으로 우리 자본을 활용하려는 외국 기업들도 많아질 것"이라며 "한국이 아시아 금융허브로 자리잡는 것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미국형 스팩이 답이다? "한국만의 모델 만들어야"
김 연구위원은 스팩의 발전을 위해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미국형 스팩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스팩은 독립법안이 아니다. 상법, 공정거래법, 금산법(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등 스팩 시행령의 조항 하나하나에 다양한 법 조항이 연관돼있다. 다시 말하면 스팩은 우리나라의 법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국내 법 환경을 무시하고 무조건 미국형 스팩처럼 규제를 최소화 하라는 요구는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스팩의 인수·합병(M&A) 방식을 우호적 합병으로 제한한 것 역시 국내법을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우호적 합병 방식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스팩이 사업회사가 돼 법 상충 문제가 없지만 지분매입을 통해 해당 기업을 인수하면 스팩이 지주회사화 될 수 있어 지금의 금산법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이런 민감한 법적 문제들을 천천히 고쳐나가면서 한국만의 스팩 모델을 만들어가야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각 시장참여자 간의 의사소통이다. 그는 "미국 역시 스팩이 도입된 것은 90년대 말이었지만 금융업계와 법조계, 규제기관이 10년 가까이 협의하며 지금과 같은 모습을 만들어 냈다"며 "우리도 스팩의 성패에 좌우되기 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한국형 스팩의 성숙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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