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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드래프트와 벤처투자

이상균 기자공개 2010-11-25 08:33:05

이 기사는 2010년 11월 25일 08: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알버트 푸홀스.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다. 지난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0년간 홈런 408개, 타점 1230개, 타율 0.331를 기록했다. 시즌 MVP만 3차례를 수상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현역 선수다. 미국 언론에서는 알버트 푸홀스가 배리 본즈의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기록(762개)을 깰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다.

이런 푸홀스도 프로 입문 당시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나 16살 때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주하다 보니 진짜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에는 명문대도 아닌 캔자스시티 근교 커뮤니티칼리지에 겨우 진학할 수 있었다.

당연히 메이저리그 팀들이 주목할 리가 없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가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13라운드 전체 402순위로 푸홀스를 지명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세인트루이스의 이 선택은 전혀 예상치 않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야구와 벤처투자는 여러 부문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신인선수와 투자기업을 선별하는 과정이 비슷하다. 프로야구팀은 각 선수들의 신체적 특징, 정신력, 생활습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매년 신인선수들을 뽑는다. 그리고 이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경험을 쌓게 해서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시킨다.

벤처캐피탈도 수많은 서류검토와 정밀 실사를 거친 뒤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이후 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금지원과 경영·재무측면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신인 야구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 메이저리그 경기를 통해 첫 데뷔를 한다. 벤처기업의 공식무대 데뷔는 기업공개(IPO), 이른바 주식시장 상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와 벤처투자가 철저히 숫자로 평가받는다는 점도 같다. 야구 선수의 실력은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 타점, 방어율, 삼진, 세이브 등 스탯(stat)으로 평가받는다. 연봉도 이 스탯과 거의 일치한다. 벤처캐피탈의 투자 성공 여부도 투자 원금 대비 회수된 투자금의 비율을 따진 내부기준수익률(IRR)이 얼마나 높으냐에 달려 있다.

야구도 그렇고 벤처투자도 그렇지만 좋은 신인과 투자기업을 발굴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선택하는 선수와 벤처기업마다 성공을 거둔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기쁜 일이라면 전혀 기대치 않았던 신인선수와 벤처기업이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다. 경제학의 논리처럼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푸홀스를 선택한 세인트루이스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올해 정부 주도의 벤처출자가 늘어나면서 벤처투자조합의 규모도 대형화가 이뤄지고 있다. 자연히 건당 투자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한건에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러다보니 반대 급부로 벤처캐피탈이 리스크가 높은 기업에는 투자를 회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IPO를 1~2년 앞둔 안정적인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벤처기업, 즉 좋은 사업아이템은 갖고 있지만 자금이 없어 고전하는 초기기업에 투자하라고 준 돈이 이상한 곳에 흘러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런 안정 지향적 투자로 인해 푸홀스와 같은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흙속에서 진주를 찾아야할 벤처캐피탈들이 이제는 번듯한 상점에서 검증된 진주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이다. 벤처캐피탈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벤처캐피탈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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