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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타계]글로벌 초일류 '삼성 신경영 신화' 잠들다프랑크푸르트 선언서 애니콜 탄생까지, '반도체·TV' 세계 1위 올려놔

김은 기자공개 2020-10-26 07:40:34

이 기사는 2020년 10월 25일 14:5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시장의 무명 기업에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1987년 경영 승계 이후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을 이끌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입원한 이후 6년 동안 투병 끝에 결국 병상을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시대를 앞선 통찰력, 반도체 사업 성공 이끈 '주역'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2류 또는 3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 신경영 성과를 어려운 국가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확산시켜 나가자."

고 이건희 회장(사진)이 신경영 선언 이후 10년 뒤인 2003년 기념사를 통해 남긴 메세지 중 일부다. 그는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으로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하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늘 위기 의식을 강조하며 혁신을 주문한 이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던 매출액을 2018년 387조원으로 약 40배 가까이 키웠다. 시가 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 규모로 약 400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눈부신 경영성과를 달성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고인이 경영 일선에 뛰어든 시기는 1966년 9월이다. 그는 같은 해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해 1968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를 거쳤다.

1977년 선친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이 회장은 1979년 삼성물산 부회장에 선임돼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는 당시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특히 이 회장은 오늘날 삼성을 일군 반도체 투자를 이끈 주인공으로 꼽힌다. 1970년대 초 당시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대부분 이 회장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사재 출연을 결심하며 반도체 사업을 고집했고, 당시 부친인 이병철 회장을 설득해 반도체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과감한 결단으로 삼성은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하는 등의 성과를 달성했다. 이후 2018년에는 세계 시장점유율 44.3%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어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2007년 세계 최초 64Gb 낸드플래시 개발,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 신화를 이어갔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양적→질적 경영 선회

무엇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신경영'을 시작으로 삼성그룹이 글로벌 시장의 무명 기업에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신경영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열린 선언식에서 그가 삼성사장들과 임직원들에게 했던 발언인 "마누라와 자식빼고 모두 바꿔라"라는 슬로건으로 잘 알려져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했다. 그는 앞서 세탁기의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사내방송을 보고 격노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전자제품 유통매장인 베스트바이에 들렸다가 삼성 TV가 일본 제품에 밀려 한 귀퉁이에서 먼지만 잔뜩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루트와 미국 LA에서 평균 8시간 이상, 최장 16시간 회의를 잇따라 주재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 방향을 선회했다.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사장단과 주요 간부를 불러 모아 신경영을 선언하며 회의를 주제하고 있다.>

대대적인 혁신을 꾀한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이른바 '애니콜' 신화를 썼다. 1984년 모토로라 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국내 휴대폰 시장은 모토로라가 석권하고 있었다. 마침내 1994년 10월 삼성은 애니콜 브랜드의 첫 제품인 SH-770을 출시했다. 이 회장은 당시 품질경영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1994년 첫 휴대전화 출시 당시 불량률은 11.8%에 달했다. 당시 이 회장이 구미사업장에서 불량품 15만대를 소각하는 ‘화형식’을 진행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당시 불태운 15만대는 시가로 500억원어치에 이르렀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7년 뒤인 2002년 삼성전자는 휴대폰 4500만대를 팔아 3조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 회장은 TV도 맹주 소니를 꺾고 시계 1위에 올려놓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점을 맞은 TV 시장에서 와인병을 닮은 보르도 TV를 2006년에 출시, 소니를 꺾고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 신경영 선언을 내세운 이후 삼성은 품질 우선으로 혁신했고 지금까지 많은 제품들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제품과 함께 조직문화도 질을 높이기 위한 구조도 개편했다. 사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갔다. 필기시험에는 전공시험 대신 전산 기초지식과 상식, 영어 시험을 도입했다. 또한 채용 학력제한을 철폐하는 등 열린 인사 개혁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품질부터 인사까지 바꾸는 체질 개선을 통해 삼성은 스마트폰, TV, 메모리 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세계 최고 상품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올해 삼성의 브랜드가치는 623억원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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