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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요금제는 착하지 않다 [thebell note]

이장준 기자공개 2022-08-16 10:25:56

이 기사는 2022년 08월 11일 07:47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간요금제도 물론 영향은 주겠지만 시급한 문제는 통신 시장에 금융권이 들어오는 거죠."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이동통신사의 5G 중간요금제 출시보다 새로 등장한 사업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몇 년 전 알뜰폰 시장에서 벌어진 무한 가격 경쟁에 관한 '웃픈'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A 업체가 최저가로 '착한 요금제'라는 상품을 출시했는데 이를 본 B 업체에서 이보다 몇백원 저렴한 '더 착한 요금제'를 선보였다. 이에 질세라 C 업체는 '진짜 착한 요금제'로 응수했다. 누가 더 착한지 겨루는 승부는 결국 모두가 망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며 끝이 났다.

통신 시장은 포화 상태로 제로섬 게임에 접어든 지 오래다. 알뜰폰 업체가 고객을 늘리려면 이동통신이나 다른 알뜰폰 사업자의 고객을 뺏어오는 수밖에 없다. 통상 단말기 약정과 묶여있는 이동통신 고객을 데려오기란 만만치 않으니 알뜰폰 사업자끼리 경쟁이 활발하다.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결국 저렴한 요금제다. 조금이라도 통신비 지출을 아끼고 싶어 하는 고객 특성을 고려하면 타당한 전략이다. 더욱이 알뜰폰은 약정에 얽매이지 않아 언제든 갈아타기 좋다. 유심 교체 비용도 특별 프로모션으로 지원해주니 저렴한 요금제가 등장하면 고객이 우르르 몰리곤 한다.

'착한 경쟁'이 다시 본격화한 건 2019년 말 KB국민은행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면서다. 도매대가 이하로 출혈을 보면서 저렴한 요금제 상품을 공급했다. 초반에는 통신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시행착오를 겪고 가입자가 별로 늘지 않았지만 서비스 출시 2년이 지난 지금 업계에서 KB국민은행 '리브엠'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기존 사업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라갔으나 도저히 이익을 남길 수 없다며 백기를 들었다. 최근엔 토스도 알뜰폰 사업체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하며 가계통신비 절감 마중물이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두려움은 배가 됐다.

이는 앞선 알뜰폰 사업자 간 출혈 경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통신 자체로 돈 벌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알뜰폰 전용 카드를 쓰면 추가 통신비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식으로 고객을 '락인'하는 데 집중한다. 기존 금융권에서 얻을 수 없는 데이터를 쌓는다는 점에서 충분히 치를 만한 비용으로 볼 수 있고 본업도 따로 있으니 망할 걱정도 없다.

리브엠은 가격탄력성이 절대적으로 높은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오랜 기간 고객을 묶어두며 판의 룰 자체를 바꿨다. 기존 사업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알뜰폰 가입자 수는 어느덧 1100만명을 넘어 보편화됐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에겐 금융권의 착한 요금제가 반갑겠지만 기존 사업자에겐 이보다 나쁜 요금제는 없을 테다. 서민 부담을 덜어주는 통신 요금제 확산 분위기는 살리되 건전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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