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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리밸런싱 스토리]선순환 깨졌다...원점에서 모두 검토①공격적 사업확대, 주력사업 부진·경기침체 겹치자 위기의 부메랑으로

정명섭 기자공개 2024-03-26 07:25:21

[편집자주]

SK그룹이 작년 말 대규모 인적쇄신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 재점검, 비용 감축으로 경영 고삐를 죄고 있다. 근래 최태원 회장의 '해현경장(解弦更張)' 발언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등판은 그룹의 위기의식을 대변한다. 과거의 성장 방식이 더이상 정답이 아닌 걸까. 확실한 건 SK그룹의 2024년은 예년과 다를 것이란 점이다. 더벨은 경영 시스템과 사업구조를 재정비하고 있는 SK그룹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1일 08: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구분되는 특징들이 있다. 전문경영인 중심의 분산된 의사결정 체계와 이를 기반으로 한 빠른 사업구조 전환이다. 덕분에 지난 10년간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수소 등으로 과감하게 사업 영토를 넓히면서 재계 2위로 오를 수 있었다.

계열사간 자율경영 아래 대규모 투자→현금창출확대·IPO→투자금 회수·신규 투자 재원 확보는 SK그룹을 대표하는 성장 방식이었다. 그러나 주력 사업의 현금창출력이 약화되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신사업 투자 성과가 부진하면서 선순환 체계가 깨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촌동생이자 오너 경영인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앞세워 경영시스템과 사업구조 등을 원점에서 검토하기 시작한 이유다.

◇전인미답 '수펙스협의회' 체제, 공격적 M&A 발판으로

SK그룹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시기는 2013년이다. 각 계열사에서 200여명의 직원이 파견된 조직으로, 분과별로 총 7개의 위원회를 두고 주요 그룹사 CEO가 위원장을 맡았다. 협의회 의장과 각 위원장들은 매월 정기회의를 통해 그룹 내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일반적인 다른 대기업집단에선 찾을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였다.

협의회에서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다 보니 지주사뿐만 아니라 계열사 CEO들은 각자의 파이낸셜 스토리를 제시했다. 자율·책임경영이 강화된 셈이다. 최 회장은 당시 사장단에 "앞으로 지주회사에 물어보지도 말고, 갖고 오지도 말라"고 말했다. 협의회는 최 회장이 부재일 때 그룹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원동력이 됐다.


수펙스체제는 SK그룹이 계열사별로 과감한 인수합병(M&A)과 신규 투자를 바탕으로 외형을 확장하는 기틀이 됐다. 당시 SK그룹은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로 반도체를 새 사업으로 추가한 이후 수출액이 내수를 처음으로 넘어 고무된 상황이었다. 내수기반형 사업구조 탈피는 최 회장의 염원이었다.

M&A로 글로벌 사업 부족이라는 갈증을 푼 SK그룹은 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 조기에 승부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분야에선 더 적극적인 M&A를 추진하는 기업문화가 조성됐다. 그룹 지주사인 SK㈜만 해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SK하이닉스와 시너지를 낼 SK머티리얼즈와 SK실트론 등 반도체 소재사들을 인수하고 SK트리켐(반도체 전구체), SK쇼와덴코(식각가스) 등을 설립했다.

2017년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장동현 SK㈜ 대표이사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유정준 SK E&S 대표이사 사장(2013년 선임) 등 당시 최 회장 라인의 핵심 실세들이 전면에 배치된 이후에도 이같은 기조는 계속됐다. SK㈜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투자회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 시기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굵직한 M&A, 지분투자건이 다수 나왔다. △ADT캡스(SKT, 2조9700억원) △암팩(SK㈜, 5100억원) △AJ렌터카(SK네트웍스, 3000억원) △KCFT(SKC, 1조2000억원) △EMC홀딩스(SK에코플랜트, 1조원) △도시바메모리(SK하이닉스, 4조원)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SK하이닉스, 10조원) △베트남 빈그룹 지분 투자(SK동남아투자법인, 1조1800억원) △플러그파워(SK㈜-SK E&S, 1조6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2015년 96조원 규모였던 SK㈜의 자산총계는 2022년 194조원까지 불었다. SK하이닉스 자산까지 더하면 약 284조원이다. SK그룹은 2022년에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에 올랐다. 2006년 3위에 오른 후 약 16년 만이었다.

◇반도체·정유 등 핵심사업 현금창출력 약화에 투자 성과 부진 '이중고'

그러나 이같은 성장 방식은 그룹 내 핵심 사업들의 실적이 뒷받침해 주지 못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업황 부진이라는 이유를 들더라도 그룹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반도체와 정유·화학 부문의 부진이 뼈아팠다.

SK하이닉스는 2021년에 역대 최대 매출인 42조9978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48% 증가한 12조4103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둔화하면서 그해 영업이익이 6조원대로 절반가량 줄었다. 작년에는 7조73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인텔로부터 인수한 중국 다롄 공장이 2022년 10월부터 시행된 미국의 반도체 규제로 장비 반입이 어려워 생산라인 투자가 쉽지 않았다. 다롄 공장은 SK하이닉스 낸드 생산의 19%를 차지한다.

SK이노베이션도 2021년에 매출 46조8429억원, 영업이익 1조7541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22년에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3조9173억원)을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업황 둔화로 이익 규모가 1조2868억원으로 줄었다.

현금창출력은 떨어졌는데 대규모 자본적지출(CAPEX)은 지속되면서 차입이 늘었다. 2020년 7조9471억원이었던 SK하이닉스의 순차입금은 지난해 23조5775억원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37.1%에서 87.5%로 올랐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사업에 대한 투자로 2021년 순차입금이 처음 1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17조원대까지 늘었다. 배터리 계열사 SK온의 흑자전환 시점이 지연된 와중에 북미 배터리 생산공장 투자가 계속된 결과다. SK엔무브 지분매각(1조1000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 상장(2조2000억원), SK온 프리IPO(4조8000억원) 등에도 현금이 부족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부문의 대규모 투자와 적자는 SK그룹의 재무부담으로 이어졌고 2022년 말 SK그룹의 차입 규모는 100조원(SK하이닉스 포함)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미국 플러그파워와 베트남 빈그룹, 마산그룹 등 SK그룹이 투자한 해외 기업들의 지분 가치도 줄어들었다. 동박, 전기차 충전 등 일부 사업군에서 협의회와 SK㈜, 계열사간 중복 투자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최창원 의장, 사업구조 재점검 돌입...자율경영 제동 시각도

최 회장이 작년 말 인사에서 핵심 실세인 부회장단을 퇴진시키고 최 의장을 발탁한 건 '그룹 변화'의 신호탄이다. 최 의장은 1994년 SK그룹에 입사한 후 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며 회사 전략을 세우고 사업구조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인력 재배치와 비용절감, 주력·비주력 사업 옥석 가리기 등은 최 의장의 전공이다.

그는 워커힐호텔과 SK상사(현 SK네트웍스)에서도 조직 쇄신을 이끌었고 2006년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을 당시 섬유사업에서 바이오와 헬스케어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협의회 의장에 전문경영인이 아닌 사촌동생이자 오너 경영인인 최 의장이 부임하면서 그동안 그룹의 장점으로 여겨진 자율경영 기조에도 일부 제동이 걸릴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협의회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이전보다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최 의장 본인이 오전 6시에 출근하고 주요 경영진이 참여하는 협의회 글로벌전략위원회 회의를 토요일에 하기로 한 것도 느슨해진 자율경영 체제와 사내 분위기에 고삐를 죄는 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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