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5월 03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가가 고공행진한 1분기. 모 정유사 관계자에게 실적 전망에 대해 물어보니 한숨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호실적이 예상되지만 걱정이 크다고 한다.2022년 이후 정치권에서는 정유사의 이익이 늘어날 기미를 보일 때마다 횡재세에 대한 논의를 도마 위에 올려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유사 관계자들은 호실적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한다.
횡재세는 '굴러들어 온 행운'으로 이익을 얻은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정유사들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으나 유가 상승으로 이익 증대가 일어난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해외 정유사들의 경우 유가 상승기에 횡재를 봤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원유를 직접 채굴, 시추한 뒤 석유제품으로 가공하는 일을 모두 맡는다. 유가가 오르면 '가만히 앉아'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야 한다.
원유를 매입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유가가 오르면 재고 효과가 발생한다. 유가가 오르면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다. 이같은 재고 효과는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는 장부상 이익이다. 유가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고스란히 영업이익에 마이너스(-)로 반영된다. 때문에 유가 상승기의 호실적을 횡재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크다.
업계의 '우려'처럼 정유사들은 개선된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보다 760% 증가한 6247억원이다. 같은 기간 에쓰오일도 4541억원을 거두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재고 효과 등이 반영되지 않은 순이익은 영업이익과 괴리가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976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에쓰오일의 순이익은 영업이익보다 한참 적은 1662억원 수준이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정에도 야당에서는 횡재세 카드를 빼들고 고유가 시대의 주적으로 정유사를 지목하는 모습이다. 횡재세 도입을 당론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횡재'라는 딱지에 호실적을 반가워하지 못하는 정유업계의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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