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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 리뷰]'세기의 재판'으로 판 키운 노태우 비자금 300억①노씨 일가, 위기마다 미공개 비자금 언급...SK 유입 사실이어도 논란

정명섭 기자공개 2024-06-14 08:29:54

[편집자주]

재계가 '세기의 재판'에 주목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얘기다. 600억원대의 재산분할금이 항소심에서 1조38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커지면서 이번 소송은 개인을 넘어 재계 2위 SK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로 심화됐다. 대법원 확정 판결만 남겨둔 상황. 더벨은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12일 16: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665억원(1심)이었던 재산분할액이 1조3808억원(항소심)으로 커진 결정적 계기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다.

300억원이 최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에 흘러가 SK가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는 노 관장 측이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처음 제시한 증거였다. 과거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돈이다.

과거에도 노씨 일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드러내 위기를 모면해왔다. 사돈지간이던 신동방그룹에 흘러 들어간 비자금을 추가로 공개해 추징금 일부를 대납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의 존재는 노 관장 측 주장에만 기반하고 있어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설령 SK그룹이 300억원을 수령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불법 수익이 자녀 세대로 대물림됐다는 대법원 판례가 남아 논란이 더 커질 전망이다.

◇노씨 일가의 전략적 카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작년 6월 노 관장은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모친 김옥숙 여사가 가지고 있던 '선경 300억'이 적힌 메모와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의 300억원 규모 약속어음(50억원으로 6장)을 처음 공개했다. 최 선대회장이 1992년경 노 전 대통령 측에 제공한 약속어음으로 김 여사가 보관해왔다.

현재 이 약속어음은 4장뿐이다. 김 여사가 2013년경 SK그룹으로부터 10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당시 박영훈 고문에게 주었으나 그 과정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김 여사는 100억원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가족의 치부라는 점에서 노 관장이 쉽게 꺼낼 수 없는 카드였다. 이혼 소송 1심에선 증거로 제시되지 않았던 이유다. 노 관장은 재산분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항소심에서 결국 승부수를 띄웠고 그 전략은 적중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는 노 관장의 동생인 노재헌 미국 변호사의 이혼 이후에도 불거진 적이 있다. 노 변호사는 1990년 고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 장녀인 신정화씨와 결혼했으나 2011년 파경을 맞이했다.

김 여사는 장남의 이혼 이후인 2013년에 돌연 노 전 대통령의 동생 노재우씨와 신명수 회장에게 각각 맡긴 비자금 120억원, 654억원을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추징금 2628억원(1997년 선고) 중 미납금 일부를 납부하기 위해서다.

당시 신 회장에게 간 비자금이 기존에 알려진 금액(230억원)보다 424억원이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김 여사는 신 회장 측의 추징금 80억원 대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노 관장이 항소심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의 존재를 오픈해 재판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낸 것과 유사하다. 노씨 일가는 위기의 순간마다 알려지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상황을 반전해 온 셈이다.

◇실체·성격 모호한 비자금, SK 수령 '사실'이어도 논란

비자금 300억원의 존재는 1심과 항소심 간 극과 극의 판결을 불러왔으나 실체가 불분명한 증거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여사가 보관한 메모와 약속어음만을 근거로 300억원이 최 선대회장에 갔고 태양평증권(현 SK증권) 인수,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 등으로 활용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자금 이동 경로 등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태평양증권 인수 시기(1991년 12월)와 300억원에 대한 약속어음 발행 시기(1992년 12월)가 1년가량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계좌 내역 확인을 통해 자금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입증은 없었다.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의 주식을 인수한 시기는 1994년으로, 이때까지 비자금 300억원이 근간이 됐을지도 모호한 부분이다.

300억원의 성격에 대한 양측의 주장도 엇갈린다.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비자금 300억원을 지급했고 약속어음은 그에 대한 증빙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최 회장은 300억원 수령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활동비 등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의 의미라고 주장한다. SK그룹이 300억원을 수령한 게 아니라면 재산분할액은 1심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SK그룹이 300억원을 실제로 수령했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비자금이라는 불법수익이 자녀 세대에 대물림되는 것을 용인하는 대법원 선례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범죄수익은닉규제법과 배치된다고 본다.

비자금 문제를 재산분할 기여도가 아닌 국고 환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2001년에 제정돼 그 이전에 발생한 비자금 조성 행위에는 적용할 수 없어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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