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interview]손진책의 연극 <햄릿> 연출노트신시컴퍼니 제작 연극, 예술로 허문 삶과 죽음의 경계…숨겨진 의미는
이지혜 기자공개 2024-07-01 09:39:22
이 기사는 2024년 06월 27일 08: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다 메타포잖나.안갯속 미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다.
안개를 걷어내고 실체가 드러나면 신비로움과 매력이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손진책 연출가는 좀처럼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연극 <햄릿>을 보는 관객의 환상과 해석을 깰까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연극이 만들어졌지만 무대에 오르는 순간 작품은 제작자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관객의 해석에 따라 제각각의 기억으로 남는 게 연극의 매력이다.
그러나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작품을 해석하는 것 또한 연극 감상의 묘미. 제작자의 의도와 자신의 해석을 비교하며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 것도 연극을 'N차' 관람하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손 연출가에게 살짝 물었다. <햄릿> 연출의 주요 포인트를.
◇‘넋을 불러 씻겨내는’ <햄릿>, 한국 정서의 재해석
"전통 연극의 현대적인 조화가 내 평생의 화두였다. 내 작품에는 한국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손 연출가가 말했다. 사실 손 연출가가 번역극을 연출한 건 10편도 채 되지 않는다. 1974년 연극 <서울말뚝이>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한 이래 한국 연극의 본질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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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양의 연극이 제의(祭儀)에서 기원했다는 데 착안했다. 손 연출가는 "<햄릿>이 시작할 때 배우들이 부는 휘파람은 작품 속 인물을 부르는 의식이자 넋을 부르는 소리"라며 “영혼 간 소통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한국 무속의 '씻김'의 개념도 적용됐다. 작품 마지막의 안개비는 복수, 죄책감, 사랑, 모정, 억울함 등 온갖 부정과 혼돈을 정화한다.
한국 연극의 본질을 탐구하는 손 연출가가 <햄릿>을 맡은 건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동양과 서양으로 선을 긋고 타자화하기보다 우리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극을 하고 싶다는 의미”라며 “고전은 인류 공동의 재산이며 특히 <햄릿>은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학’이기에 번역극이든 창작극이든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 자의 시선으로 본 죽은 넋 ‘생사 경계 허물기’
신시컴퍼니의 <햄릿>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은 시선이다. '배우 역'의 산 자가 죽음의 강을 건너서 죽은 영혼들의 연극 <햄릿>을 보고 함께 호흡하다가 이승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연극 속 햄릿을 비롯한 오필리어, 선왕,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모두 죽은 영혼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연극을 지켜보고 삶과 죽음을 오가며 경계를 허무는 존재, 그것은 바로 4명의 '배우 역'이다. 이들은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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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휘파람으로 죽은 인물들의 넋을 불러냈다면 이번에는 산자와 넋이 어우러질 차례다. 어우러지기 위한 의식, 그것이 바로 숨을 쉬는 것이다. 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배우들이 휘파람을 불고 바닥을 두드린다. 그리고 손바닥에 글씨를 쓴 뒤 일제히 크게 숨을 쉰다. 마치 제의처럼.
손 연출가는 “숨은 삶과 죽음의 소통의 수단”이라며 “손의 글씨는 인물들에게 보고 싶은 사람, 묘비명 등 여러 가지를 써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게 가장 중요한 거였다”면서도 연출 의도는 관객에게 맡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 뒤 4명의 '배우 역'이 “어둡다, 어두워”, “춥다, 뼈가 시리도록 추워”라는 대사를 내뱉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대사는 극의 마지막에서도 반복된다. 어쩌면 이 대사는 저승을 바라보는 산 자의 소회가 아닐까.
손 연출은 “흰 종이가 마냥 흰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색깔이 있듯 검정색도 마찬가지”라며 “삶과 죽음, 세상도 그렇다”고 말했다.
◇거울과 원, 그리고 사각형의 메타포
사실 <햄릿>의 무대는 밋밋하다 싶을만큼 단순하다. 무대 뒤편으로 큰 거울이 펼쳐져 있고 무대 위에는 커다란 원형이, 그 안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게 거의 전부다. 이건 2016년 신시컴퍼니의 <햄릿>이 초연할 때부터 고수해왔던 방침이다. 연기에 집중하자는 뜻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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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무대 장치 하나하나의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거울은 햄릿의 분열적 모습, 서로를 감시하는 극 중 인물의 모습을 표현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햄릿의 대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연극의 목적은 자연에다 거울을 비추는 일이지. 선은 선, 악은 악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비춰내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데에 있어.’
무대 위 원은 삶과 죽음을 뜻한다. 손 연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속의 사각형의 뜻을 묻자 그는 “인생은 무대라고 하잖나”라고 답했다.
손 연출가는 “삶과 죽음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도 우리는 죽음과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한다"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햄릿>을 통해 사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시컴퍼니의 연극 <햄릿>은 9월 1일까지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제작사는 신시컴퍼니이며 프로듀서는 박명성이다. 주연으로는 강필석과 이승주가 햄릿 역을 맡고 루나가 오필리어 역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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