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11일 06: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를 다닐 때 별명이 '한번만요'였습니다. 회의 때마다 손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거든요. 근데 잘 안받아들여져서 제발 한번만 말하게 해달라고 하다보니 생긴 별명이었습니다. 주니어였던 저는 발언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발언을 한다 한들 반영되는 일은 더 드물었죠.“
삼성전자 출신으로 쇼퍼블 비디오 테크놀로지 소스(sauce) 운영 스타트업을 창업한 파운더는 2010년대 초반 약 3년 간의 재직기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파운더는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학업까지 마쳤다. IBM과 퀄컴을 다니다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굳이 한국으로 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것은 국적(미국)과는 별개로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정체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관료주의적 조직문화, 중앙집권적 통제 그리고 상명하달식 업무방식에 염증을 느껴 결국 창업의 길로 나섰다.
스타트업 씬(scene)과 벤처캐피탈업계에는 유독 삼성전자 출신이 많다. VC업계만 하더라도 2000년대 전후 입문해 현재는 C레벨 임원으로 올라선 이들만 십수명이다. 정일부 ㈜IMM 대표, 강준규 지앤텍벤처투자 대표, 주성진 L&S벤처캐피탈 대표, 김정현 케이런벤처스 대표, 안재광 SBI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이 삼성전자 출신이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김제욱 부사장도 삼성전자를 다니다 2010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전향했다.
삼성 출신 VC 대표는 삼성전자 그 중에서도 반도체 사업부문 출신이 지난 20년 간 VC업계로 유입되며 주류를 형성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술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그안에서 경험을 쌓은 삼성전자 출신 심사역은 비단 기술적인 전문성을 갖췄을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대한 통찰력과 트렌드 분석 능력에서 큰 강점을 지닌다.
또 다른 VC 대표는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관리의 삼성'이란 표현이 대변하듯 삼성의 조직문화는 폐쇄적이고 경직돼 있다. 독립적인 의사결정이나 창의적인 발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가 아니다. 반면 VC업계는 자율성과 유연성에 기반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수 있는 심사역을 필요로 한다. 삼성 조직문화에 최적화된 인재는 VC업계와 핏(fit)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삼성 조직문화에 회의감을 느낀 이들이 벤처업계로 향해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해석이다.
'위기의 삼성'이라는 말을 부쩍 자주 듣는다. 실적과 주가 등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는 계속 하향 추세다. 인공지능(AI) 기술 구현에 필수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력에서 경쟁사에 뒤지고 있다. 기술 제일주의를 앞세웠던 삼성에겐 수치스런 일이다.
최근 몇년 사이 현대차 출신 심사역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모빌리티 사업을 영위하는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로봇, 미래항공모빌리티 등에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더라도,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부 반발에 연구개발 의지가 꺾이지 않게끔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는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 향후 10년 후 산업계 출신 벤처캐피탈리스트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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