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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질간 지분경쟁, 숙부 승리로 기울어 ②故허영섭 회장 유언 집행되면 지분구도 역전

정호창 기자공개 2012-07-04 11:45:21

이 기사는 2012년 07월 04일 11: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녹십자의 이노셀 인수를 그룹 오너 가문의 계열분리와 연관짓는 이유는 고(故) 허영섭 회장의 사망으로 녹십자홀딩스의 지분구도에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허영섭 전 회장이 최대주주, 동생인 허일섭 현 회장이 2대주주이던 지분 구도가 형의 사망 후 역전되면서 경영권 승계와 후계 문제가 표면화되는 것이다.

녹십자는 1967년 설립된 수도미생물약품판매를 모태로 두 형제가 함께 키워 온 그룹이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경영권 승계를 주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기가 문제일 뿐 계열분리는 사실상 예정된 수순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어느 쪽이 그룹을 이어받고 어느 쪽이 독립할 것인가와 양쪽이 얼마의 비율로 그룹을 쪼갤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경영권의 근간인 주식을 얼마나 가졌느냐, 즉 지분율 확보가 문제다. 따라서 기업의 후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는 자연스럽게 지분율 경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녹십자 그룹 역시 마찬가지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허영섭 회장의 사망을 전후로 두 형제 일가가 잇따라 그룹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의 지분 매입에 나서며 지분 경쟁을 벌였다.

지분 경쟁의 서막은 허일섭 회장 일가에서 먼저 열었다. 허 회장과 부인 최영아씨, 아들 진성·진영·진훈 3형제는 2009년 4월과 5월 10억 원 가량을 투자해 녹십자홀딩스 주식 1만3048주를 매입했다. 허영섭 회장이 타계하기 6개월 전이다.

같은 해 9월부터는 허 전 회장의 임종을 예감한 직계 가족들이 움직였다. 부인 정인애씨와 2남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 3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 등이 그해 연말까지 37억여 원을 들여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사들였다. 그 결과 허 전 회장 일가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율은 16.72%에서 17.72%로 증가했다. 허 전 회장은 그 해 11월15일 별세했다.

이듬해부터 허일섭 회장 일가가 다시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허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2010년 2월부터 4월까지 31억여 원을 투자해 녹십자홀딩스 지분율을 10.47%에서 11.25%로 끌어올렸다.

고 허영섭 회장 타계 후 증권가에서 두 일가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자 녹십자그룹은 허 전 회장의 아들인 은철·용준 형제를 각각 녹십자와 녹십자홀딩스의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며 분쟁설을 일축했으나, 물밑에선 지분 확보를 위한 총성없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팽팽하던 경쟁 구도에 변화가 생긴 건 지난해 11월부터다. 허 전 회장의 타계 2주기 직후부터 부인 정인애씨가 갑자기 보유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한 것. 이후 정씨는 올 2월까지 보유하고 있던 녹십자홀딩스 지분 1.69% 전량을 팔아치웠다. 매각 대금은 116억 원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정씨의 지분 매각사유는 아직까지 뚜렷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씨의 지분 매각은 두 일가의 지분 경쟁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보인다. 어머니인 정씨의 지분 매각 이후 은철·용준 형제가 다시 지분 매입에 나섰고, 숙부인 허일섭 회장도 꾸준히 주식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철·용준 형제는 올 2월과 3월 23억여 원 어치의 주식을 더 사들였다. 이에 질세라 허 회장도 올 2월부터 4월까지 31억 원을 투자해 지분을 늘렸다.

지난 6월말 기준 두 일가의 지분율은 16.64%와 11.83%로 은철·용준 형제 쪽이 4.81%포인트 앞서 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착시현상일 뿐 실제로는 허 회장 쪽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착시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고 허영섭 회장의 유언장이 아직 집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이 유산 배분에서 본인이 배제된 것에 반발해 어머니 정인애씨를 상대로 법원에 유언무효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결과다. 이 때문에 허 전 회장이 소유했던 13.18%의 지분이 여전히 분배되지 않고 남아있어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허 전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유언장이 집행되면 현재의 지분구도가 크게 변화한다. 허 전 회장이 지분의 상당수를 유가족이 아닌 사회복지법인 등에 유증했기 때문이다. 이 유언이 그대로 집행될 경우 은철·용준 형제 쪽 지분율은 7.09%로 크게 낮아져 숙부인 허 회장보다 4.74%포인트 뒤지게 된다. 2009년 이후 두 일가 합쳐 132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숙질간 경쟁의 결과가 숙부의 승리 쪽으로 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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