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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리기 어려운 창투사들

박제언 기자공개 2013-02-25 07:51:32

이 기사는 2013년 02월 25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한 창업투자회사의 대표이사가 은행에 갔다. 운영자금을 잠시 빌려쓰기 위해서였다. 업계에서 인지도가 있고, 보유 펀드의 수익률도 건실하게 나오는 만큼 쉽게 대출 받겠거니 창투사 대표는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은행은 창투사가 운용 중인 펀드를 위험자산으로 분류했다. 대출 이자율은 8~9% 사이로 나왔다. 은행은 그나마 회사가 건실해서 대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창투사는 10% 넘는 이자율로 대출을 받거나 대출 자체가 안되는 곳이 많다고 은행 직원은 귀띔해줬다.

창투사는 납입자본금이 5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 벤처조합을 설립할 때는 일반적으로 조합약정액에서 GP(무한책임투자자) 의무 부담비율로 5%안팎을 출자해야 한다. 쉽게 말해 300억 원 규모의 벤처조합을 만들기 위해 적어도 15억 원 안팎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창투사 설립 후 3년 이내 자본금의 30%에 해당하는 액수 만큼 투자하거나 조합에 출자하지 않으면 창투사 지위를 잃게된다. 투자를 이어가면서도 돈은 계속 소요되는 구조인 셈이다.

창투사가 만든 벤처조합은 통상 투자기간이 7년 이상이다. 회사 운영비용은 매달 들어가는데 벤처조합에 돈(GP출자금)이 묶여 있다. 신생 창투사를 벗어난 중견 창투사가 매년 쓰는 판관비만 20억~40억 원 사이다. 결국 조합 청산 후 수익 분배(성공적인 투자였다는 가정 하에)를 하기 전에는 추가적인 벤처조합을 조성해야 회사 운영도 가능해 진다. 조합에서 나오는 관리보수로 회사 운영자금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기금이나 정책금융공사 등 LP(유한책임투자자)들에게 출자받기 위해 조합을 설립키도 한다. 트랙레코드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증자로 자본금을 충당하기도 어렵다. 비상장 창투사가 증자하기 위해선 통상 투자자에게 기업공개(IPO)나 배당금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해야 한다. 현재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발행시장에서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창투사들이 손을 벌릴 수 있는 곳이 금융권인 셈이다. 돈 많은 대주주라면 문제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매물로 나온 창투사가 많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부자라고 해서 자선사업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1998년 정부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환 자금을 창투사에 저리에 빌려준 적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창투사에 도움이 되지 않아 관련 정책을 없앴다. 펀드 규모가 작은데다 굳이 창투사가 돈을 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5년 전과 지금의 창투사는 여러 모로 다르다. 투자 규모나 펀드 규모가 달라졌다. 같은 잣대로 과거와 현재의 창투사를 보기엔 무리가 있다.

중소·벤처기업 육성은 정책적 과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곳이 창투사다. 벤처기업에게 저리로 운영자금을 빌려주는 정책은 존재한다. 그러나 벤처기업 육성에 필요한 창투사 중 다수는 높은 이자율에 대한 부담감으로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들다. 벤처 정책이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조합 결성 출자금의 목적에 한해서라도 정부기관에서 저리에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줘야 한다. 창투사는 돈에 쪼들리지 않아야 투자에 대한 시야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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