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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한푼 안낸 일진그룹 경영권 승계

정호창 기자공개 2014-01-22 08:18:31

이 기사는 2014년 01월 20일 07: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는 가끔 매각 주체의 의지에 반하는 매물이 나온다. 팔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내놓게 되는 매물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상속 매물이다. 기업의 최대주주가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이를 물려받은 사람이 거액의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해당 지분을 처분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M&A 시장에 나온 농우바이오도 이런 경우다. 창업주인 고희선 명예회장이 지난해 8월 갑작스레 폐암으로 별세하면서 상속 매물 처지가 됐다.

고 회장이 사망 전 보유한 농우바이오 지분 45.4%의 시장 가치는 1500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고 회장 유족들이 이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내야 할 상속세는 1000억 원이 넘는다. 세법상 최대주주 지분의 경우 과표가 20% 할증되는 규정과 과표 주가 계산법 등을 반영하면 고 대표 상속지분의 가치가 2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10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는 고 대표 유족들은 결국 농우바이오 지분 매각을 검토하게 됐다. 유족들 입장에선 가장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업마저 잃게 된 셈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메이커인 쓰리세븐(777)의 오너일가도 지난 2008년 창업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부과된 상속세 때문에 결국 회사를 매각해야만 했다.

상속세는 국내 세법 중 가장 세율이 높다. 최고 50%의 세금이 부과된다. 따라서 기업 오너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하는 세금이다. 오너일가가 처음 100% 지분을 보유했다고 해도 2~3대의 상속 과정을 거치면 반의 반 토막으로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상속세는 존재 이유가 분명한 세금이다. 상속세는 부의 집중을 막고 소득과 재산을 재분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상속으로 얻은 재산은 노력한 대가가 아니라 불로소득이므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 공평한 복지사회 건설에 기여토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계에서는 상속세를 제대로 내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기업 오너 대부분이 상속세를 내지 않는 편법 승계를 당연시 여기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낸다고 하면 '여태 승계 준비도 안하고 뭘 했나'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국내 재계의 분위기다.

일례로 최근 가업 승계 작업을 진행한 일진그룹 사례를 보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일진홀딩스 지분 15.27%를 자신의 장남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일진파트너스에 173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아들에게 회사 경영권 지분과 부를 고스란히 넘긴 셈이지만 이번 거래에서 아들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두 부자 모두 증여세나 상속세 역시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허 회장은 지분을 상속해 주면서 거액의 현금까지 챙겼다.

이 돈은 어디서 왔을까. 표면상으론 지분을 인수한 일진파트너스가 지불한 돈이지만 따지고 보면 일진그룹의 회삿돈이 돌고 돌아 허 회장 손에 들어간 셈이다. 일진파트너스가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허 회장 입장에선 아들에게 지분도 물려주고, 세금도 절약하고, 두둑한 현금까지 챙겼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물고기까지 주운 격'이다.

남들은 세금 내려다 가업까지 잃는 마당에 다른 쪽에선 세금 한 푼 안내고 '일석삼조(一石三鳥)' 효과를 누리고 있으니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상속세 입법 취지가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다.

과세당국은 이런 편법들을 막을 대책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포괄증여나 포괄상속의 개념을 확대하고 과세그물이 좀 더 촘촘히 쳐지도록 규정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

납세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4대 기본의무 중 하나다. 이 신성한 의무를 성실히 지키는 사람과 기업이 더 이상 '바보' 소리를 듣는 일이 없어야 제대로 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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