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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증권업 기로(岐路)에서 [thebell desk]

김용관 차장(CM팀장)공개 2014-04-21 10:21:34

이 기사는 2014년 04월 18일 12: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삼성증권은 미래에 중요한 회사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08년 7월)

삼성증권은 ‘한때' 삼성그룹의 미래였다. 이건희 회장이 그렇게 말했다. 회장이 공식적으로 말했으니 다들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힘을 받았는지 당시 삼성증권 사장은 "반도체 사업은 삼성전자, 나아가서는 삼성그룹의 글로벌 도약을 이끌었던 것처럼, 삼성증권이 제2의 반도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글로벌 톱 10 증권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홍콩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막대한 자금을 호기롭게 투자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년만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사업을 접었다. 대대적으로 영입한 고급인력들은 빠져나갔고, 그들에게 지불한 수백억원이 넘는 막대한 돈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존심에는 지울수 없는 금이 갔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증시 침체와 경영 전략의 오류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 1등 증권사가 적자를 걱정할 단계에 이르렀다. 브라질 채권, 국고채 30년물 등 야심차게 내놓은 상품들은 오히려 부메랑이 돼 삼성증권의 명성을 망치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잇따라 진행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100여명을 줄였고, 올들어서도 300명 이상을 축소할 방침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에도 100명 가량을 희망퇴직 형식으로 줄였다고 한다. 2013년 3월 기준 3000여명의 임직원이 그해 연말 2700여명으로 줄었다. 여기다 300여명을 더 줄인다고 하니 일년도 안돼 20% 가량의 직원을 자른 셈이다.

분기에 10조원을 벌어들이는 삼성전자를 가진 그룹 입장에서 겨우 적자나 면하는 삼성증권은 먼지같은 존재다. 그런 점에서 삼성그룹이 증권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게 아닌가 싶은 우려가 든다. 다른 그룹이라면 몰라도 삼성그룹이 그렇게 진단했다면 문제다. 그룹 최고위층의 판단으로 이번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때 상황의 심각성은 더하다.

증권사의 수익성을 확인하는 지표 중 공식적으로 집계하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 활용하는 것 중 하나가 '고객 예탁자산별 수익성'이다. 주식 및 채권, 선물 브로커리지수수료, 이자 수입, 상품취급 수수료 등을 포함해 고객이 증권사에 맡긴 예탁자산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말한다.

1999년 코스닥 붐이 일던 당시 증권사의 고객 예탁자산별 수익성은 100bp가 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지표는 악화됐다. 2005년 들어 80bp대로 축소된 수치는 지난해에는 50bp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업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증시 불황은 물론이고 브로커리지 수수료의 감소, IB 간 치열한 경쟁에 따른 덤핑 공세, 금융상품 판매 마진의 악화 등이 주요 이유다.

문제는 이같은 수익성 감소세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 시장이 회복하더라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노리고 있지만 2008년 홍콩 사태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자본시장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원활한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주는 데 있다. 이처럼 자본시장이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데는 투자자와 기업 사이를 연결해주는 증권사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삼성증권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증권업계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억측이겠지만 삼성증권의 구조조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핏줄과 같은 자본시장의 근간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증권업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이다. 한 사람이 수천억을 벌 수 있는게 증권업이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미래의 자산을 쳐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생각했던 삼성증권의 미래가 이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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