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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ABCP시장 리스크 분석 [Credit View]

윤영환 서울신용평가 평가사업본부장공개 2014-07-07 10:01:00

[편집자주]

신용평가는 자본시장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단지 신용투자의 잣대에 그치지 않고, 산업/기업의 펀더멘털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늘 '광산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입니다. 더벨을 통해 마치 지각 아래 거대한 멘틀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다양한 크레딧 전문가의 뛰어난 직관을 감상해 보십시요.

이 기사는 2014년 07월 04일 10: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영웅들은 SF영화 속에만 있지 않다. 금융시스템 속에도 금융 안정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안전장치가 있다. 그들은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접시를 빼는 방식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지킨다. 과감히 접시를 빼기 위해서는 걸맞은 권위가 있어야 한다. 제도적 권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금융시스템의 위험요소에 대한 각종 의제에서 주도권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2014년 4월의 금융안정보고서는 ABCP시장의 확장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 분석을 담았다. 깔끔한 자료정리와 논리전개가 돋보이는 분석이다. 특히 리스크를 여러 각도에서 정리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신용 리스크 측면에서는 정기예금-ABCP와 CDS-ABCP의 원리금 상환 불이행 가능성은 낮지만, 건설회사의 재무구조 악화로 PF-ABCP의 상환능력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만기불일치 리스크 측면에서는 정기예금-ABCP의 경우 만기불일치에 따른 리스크가 없지만, 공시의무 강화 이후 CDS-ABCP와 PF-ABCP의 만기불일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레버리지 리스크 측면에서는 정기예금-ABCP와 PF-ABCP의 경우 레버리지가 발생하지 않고, CDS-ABCP도 레버리지 이슈가 있기는 하지만 준거자산이 대부분 안정성이 높은 국채이기 때문에 신용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았다.

시스템 리스크 측면에서는 ABCP가 대부분 특정금전신탁과 자산운용회사를 통한 간접투자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어 금융회사의 투자 실패에 따른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다만 PF-ABCP와 CDS-ABCP의 만기불일치에 따른 매입보장약정 확대로 금융회사와 ABCP간 연계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ABCP 발행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초자산이 우량한 정기예금-ABCP 위주로 증가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ABCP시장의 전반적인 리스크는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증권사의 매입보장약정 확대와 건설PF-ABCP의 전자단기사채 전환은 경계할 필요가 있으며, ABCP시장이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는 ABCP 위주로 발행이 확대되면서 시장의 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겠으나 기업자금 경로로서의 ABCP기능이 더욱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우선 공시의무 강화 이후 만기불일치에 따른 리스크가 커졌다는 시각에 대한 것이다. 물론 거래당사자나 시스템 측면에서도 가능하면 만기불일치가 없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공시의무 강화로 장기 ABCP가 억제되면서 만기불일치 리스크가 커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ABCP는 어디까지나 단기금융상품이다. 장기 ABCP는 자본시장통합법 도입과정에서 발생한 제도적 틈새를 활용한 상품이지만 기본적으로 금융질서에 모순된 것이다. 나아가 장단기 금융시장은 운용원리가 엄연히 다르다. 장기금융시장에서 공시제도는 가장 기본적 토대다. 편법적 또는 기형적 자금조달이 확대되면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시의무 강화에 따른 일시적 만기불일치 리스크 확대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CDS-ABCP의 레버리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준거자산이 대부분 국채여서 신용사건 발생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CDS-ABCP 활성화 초기에 가장 선호되던 준거자산은 골드만삭스 채권이었다. 그 규모가 수 조 원에 달하여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는 골드만삭스와 우리 금융시장이 한 배를 탔다는 말도 돌았었다. 규제강화와 골드만삭스의 신용등급 하락 이후 준거자산이 국채 위주로 재편되었다지만 국채도 국채 나름이고, 최근에는 중국 은행이 급부상하듯이 준거자산의 유행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국채든 은행이든 그 이름에 안주하기 보다는 그것이 뭐가 되었든 특정 자산에의 의존도가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거자산 현황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는 방안부터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간접투자 형태의 투자라 금융회사(사실상 증권사)의 손실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ABCP의 상당부분이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을 경유한다. 형태상 간접투자인 것은 맞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신탁상품의 리스크가 증권사와 절연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증권사 신탁의 독립성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원론적 독립성이라는 것은 아무 대책 없는 비무장 중립국가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제도적 완비와 시장관행의 축적, 그리고 시장의 구조적 균형이 역사적으로 확인될 때에야 비로소 그 독립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절대 강자인 연기금이 신탁상품 투자로 큰 손실을 볼 경우에도 과연 리스크 절연의 원칙이 유지될 수 있을까? 동양 사태에서 보듯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버린 신용사건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도 판매사가 외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신용사건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오면 그 부담은 폭발적으로 확대된다. 펀드투자손실의 상당부분을 판매사가 분담했던 대우사태의 교훈이 잊혀지기엔 너무 이르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몇 가지 필요해 보인다. 우선 정기예금-ABCP의 경우 신용 리스크나 만기불일치 리스크가 크지 않더라도, 근본적으로 은행예금과 자본시장의 과도한 연결이 불러올 수 있는 부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바젤Ⅲ는 레버리지 리스크뿐만 아니라 유동성 리스크의 관리에도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 바로 순안정자금조달비율(Net stable funding ratio; NSFR)이다. 은행의 도매 자금조달 의존을 억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정기예금-ABCP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유사시 우리 은행들의 유동성 리스크 관리능력에 대한 신뢰약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ABCP가 그 원조인 미국시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곧 위축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유형의 디커플링(de-coupling)은 통상 금융시장의 규제이슈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선진 금융시장에서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흐름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이런 차이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

파생상품 관련 신용이슈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의 오류다. 부분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모아 놓으면 괴물이 될 수 있다. 구조적 관점에서 이슈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부분별 합리성에 대한 점검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ABCP가 급성장하는 배경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윤영환 서울신용평가 평가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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