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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View]쿼바디스, ABCP

윤영환 크레딧애널리스트공개 2013-10-11 08:33:57

[편집자주]

신용평가는 자본시장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단지 신용투자의 잣대에 그치지 않고, 산업/기업의 펀더멘털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늘 '광산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입니다. 더벨을 통해 마치 지각 아래 거대한 멘틀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다양한 크레딧 전문가의 뛰어난 직관을 감상해 보십시요.

이 기사는 2013년 10월 10일 14: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와 미국의 ABCP 잔액추이를 그림으로 일견해보자.

한국,미국 cp잔액

차이가 확연하다. 최근 미국의 ABCP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ABCP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ABCP의 비약적 확장과 급격한 위축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위기 이전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열풍과 위기 이후의 금융규제강화 및 투자은행 쇠락을 반영한다. 한마디로 ABCP에는 이번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시스템의 핵심적 모순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ABCP의 열풍이 왜 그리 위험했는가? 일반적으로 기초자산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신용평가사의 실패에 대한 비판은 덤이다. 맞는 지적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더 무서운 것은 ABCP가 투자은행의 레버리지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특수목적투자기구인 SIV(Special investment vehicle, Conduit)로 자산과 부채를 이전(book-off)함으로써 레버리지 배율도 낮추고 충당금 설정부담도 축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발표된 투자은행의 레버리지도 이미 높은 수준이었지만 실질적인 레버리지는 그보다 훨씬 더 컸던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SIV가 불현듯 큰 손실에 노출되면 결국 투자은행이 떠맡아야 한다. 그리고 어지간한 손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장의 신뢰상실이다. 베어스턴스가 문을 닫아야(JP모간에 피인수) 했던 것도 투자손실이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다. 신뢰상실에 따른 자금회수(RP 환매)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실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 달리 말하면 낮은 투명성이 자금의 대규모 연쇄 이탈로 이어진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런 현상이 여러 투자은행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투자은행 하나만의 이슈라면 약간의 소란에 그치고 곧 마무리된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쏠림은 필연적으로 금융위기의 거대한 공포가 되어 돌아온다.

소위 대차대조표 효과(Balance sheet effect)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 투자기관의 손실과 그에 따른 자산매도는 어지간해서는 자산의 시장가격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수의 투자기관이 동시에 자산매도에 나서면 자산가격은 폭락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손실이 더 커지고 레버리지는 훨씬 악화된다.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이제 말머리를 우리나라 ABCP로 돌려보자.

2007년 말 우리의 ABCP 발행잔액은 26.7조원이었다. 건설PF와 은행Conduit이 각각 10조원 수준으로 양대 축을 이루었다.

한 축인 은행Conduit은 한참을 횡보하다가 금융위기 이후 점진적으로 위축되어 2012년 말에는 2조원 아래로 잔고가 내려왔다. 감독 기준 강화로 은행들이 부외자산을 활용하는 자기자본투자를 점차 줄였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한 축이었던 건설PF는 조금 더 복잡한 M자형 흐름을 보였다.

한동안 꾸준히 성장(2008년 중반 13조원)하다가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 위기의 영향으로 위축(2009년 초 11조원)되었고, 다시 은행들의 건설여신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확대 추세로 전환(2009년 중반)하여 2011년 초 22조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건설업 구조조정이 본격화(2011년 중반)되면서 위축되기 시작하여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2013년 9월 말 14조원).

은행의 디레버리징과 건설업체들의 구조조정 사이의 자금공백을 건설PF ABCP가 상당부분 메워준 것이다. 리테일 시장이 건설PF를 소화하지 못했다면 은행 신용경색의 충격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후일 투자자 보호 이슈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금융위기의 관리에 기여한 점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2011년 이후 ABCP시장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미공시ABCP의 대폭발이다. 미공시ABCP는 전체 ABCP의 2/3수준(2013년 초)까지 확대되었다가 2013년 4월의 공시의무화를 앞두고 서서히 축소되어 2013년 9월 말 현재 45%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런데 미공시ABCP의 축소는 곧바로 증권ABCP의 확대(2012년 말 2% ' 2013.9월 말 24%)로 메워지고 있다. 대부분의 미공시CP가 사실은 증권ABCP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시의무화 조치도 직접적으로는 ABCP 열풍을 잠시 잡아두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공시의무화를 통해 드러난 미공시ABCP 또는 증권ABCP의 기초자산 대부분은 정기예금과 회사채, 그리고 CDS로 파악된다.

모든 증권화 프로그램은 나름 합리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다. 충분히 안정적인 기초자산의 질과 신용보강 또는 유동성보강이 뒷받침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구성의 오류가 존재할 가능성 때문이다. 하나하나는 문제가 없지만 모아 놓으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이슈가 보인다. 하나는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절차와 비용을 들이느냐는 것이다. 이는 투자한도 이슈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정기예금과 편입한도 이슈가 있는 H그룹 회사채가 기초자산으로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카드위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낮은 등급 캐피탈채권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이슈는 만기의 불일치(mismatch)다. 물론 대부분 증권사가 유동성을 보강한다. 언뜻 건설PF 이슈가 연상된다. 건설PF가 괴물이 된 이유는 시공사의 신용보강을 적시에 시공사의 신용부담으로 환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리스크 피드백 실패). 쉽게 말하면 지급보증이 크게 늘어도 시공사의 신용등급을 낮추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과연 평가사들이 이러한 유동성 보강에 따른 리스크 확대를 제대로 증권사의 신용등급에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이슈 하나는 회사채 수요의 왜곡이다. 앞서의 두 가지 이슈는 다소간 규제차익 또는 규제회피의 이슈를 안고 있다. 이런 형태의 투자수요는 기반이 단단하지 않다. 외부환경의 변화가 규제강화로 이어지면서 수요기반이 일시에 흔들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이상수요에 힘입은 신용 스프레드 강세는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6년 11월 회사채 발행시장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외은지점의 단기국채 투자와 증권 RP의 확대라는 수급요인에 힘입어 19bp까지 축소되었던 AA-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가 불과 14개월 만에 100bp 이상 상승했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슈는 ABCP의 상당부분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증권사의 신탁상품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림을 먼저 살펴보자. 신탁의 급성장 및 CP(주로 ABCP)와의 밀접한 연관성이 눈에 들어온다.

신탁 자산구성

그림은 자금순환표 자료로 은행 신탁도 포함된다. 증권 신탁은 CP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다. 신탁자산 규모가 큰 증권사 대부분은 CP의 자산비중이 50%를 훌쩍 상회한다.

금융상품의 빠른 성장과 단기금융의 긴밀한 매칭은 마음 편히 바라보기 어려운 구조다. ABCP의 상당수가 만기 불일치 이슈를 안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가장 일반적인 거래유형은 중소형 증권사가 제조한 ABCP가 대형 증권사의 신탁을 통해 연기금 등의 대형 기관투자가나 개인투자자에게 팔려가는 구조다. 언뜻 보면 펀드와 다를 것이 없는 간접투자 상품으로 보이지만 그리 간단한 이슈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정보투명성과 규제 수위가 낮은 점은 최근의 공시강화로 다소나마 개선되었다. 하지만 투자자 이슈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대형 기관투자가는 교섭력의 우위에서, 개인 투자자는 간접 분매에서 이슈가 존재한다.

최근 A평가사는 증권 신탁의 유동성 이슈를 지적하면서도 증권사와 신탁의 리스크 절연을 감안하면 신용도에는 큰 부담이 아니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원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증권사와 계열사의 신용이슈도 마찬가지였다. 직접적 신용공여가 없으니 리스크 절연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명목상의 규제보다 우선하는 것은 현장의 실질이고 역학이다. 그룹 회사채의 불완전판매 이슈와 마찬가지로 대형 기관투자가의 절대적인 교섭력 우위는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유사시에는 계약조건이나 리스크 절연 원칙이 그리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사실상의 1:1 계약인 신탁의 방어벽은 그냥 말장난이 될 수 있다.

간접 분매는 조금 복잡하니 예를 들어 설명하자.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확실성이 큰 하이브리드 채권을 사모 발행하도록 유도했다. 한마디로 변동성을 감당할 역량이 있는 기관투자가만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이브리드 채권의 상당부분이 ABCP 및 신탁으로 변신했다. 이 신탁이 개인투자자에게 팔림으로써 정책취지를 훼손하는 것이 바로 간접 분매의 이슈다.

마지막으로 ABCP에 대한 규제 이슈를 살펴보자. ABCP에 대한 규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최근 미국 ABCP가 위축된 것도 ABCP 자체에 대한 규제 때문이 아니라 투자은행의 몰락과 건전성 규제강화로 관련 비즈니스가 위축된 결과다. 전통적으로 미국CP의 최대 투자자인 MMF의 위축도 한 몫을 했다.

큰 틀에서 말하자면 '금융의 증권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 기업은 물론이고 많은 금융회사와 국가기관까지도 이를 통해 자금조달 경로를 다양화하고 비용을 낮추고 있다. 아무리 화마가 두려워도 불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증권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필요한 것은 상품의 리스크 특성과 거래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하고 리스크의 쏠림에 대해 보다 면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증권화는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라 다분히 니치 마켓의 금융상품이다. 니치 마켓의 가장 큰 위협은 규모가 너무 빨리 너무 크게 성장하는 것이다. ABCP와 증권사 신탁은 이미 몸집이 충분히 커졌고 여전히 고속 성장하고 있다. 임계점에 대한 부담감이 자연스러운 시점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증권화 하나하나는 충분한 설명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쑤시개가 쌓여 산이 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이쑤시개가 아니라 산의 이슈다. 산의 무게를 제대로 이겨내고 이 영광을 오래오래 이어가려면 너무 늦기 전에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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