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1월 06일 07시1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죽기 살기로 덤볐더니 은메달에 그쳤다. 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죽기로 덤비니 금메달을 땄다."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며 감동을 안겨줬던 김재범 선수의 수상 소감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을 획득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내뱉었던 말이다.
지난 5일 서울 SK그룹 서린사옥 앞에서 100여명의 무리진 사람들 선두에 선 한 인물이 확성기를 부여잡고 같은 말을 외쳤다. 머리에 붉은 띠, 몸에 붉은 옷을 걸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동감을 표했다. SK브로드밴드(SKB) 비정규직 지부 노조원들이었다.
김 선수의 소감을 인용한 것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이 같은 각오로 투쟁하고 목적을 쟁취하자는 말이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소수의 이익을 위한 시위라는 점에서 거창할 수는 있지만 이들에게는 비장한 순간이었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충분히 공감가는 일이다. 하지만 SKB 노조원들이 앞세우고 있는 구호에는 유독 거슬리는 말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비정규직 해결 않는 최태원 회장 사면 웬말이냐'가 대표적이다. 한 줄 건너 한 줄, 대표적인 시위 문구가 최 회장 사면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었다.
최근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는 경제인 사면론이 무르익고 있는 중이다. 오너의 장기 부재로 다양한 부작용을 겪고 있는 SK그룹에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오너 경영에는 단점과 동시에 장점 또한 존재한다. 전자는 최 회장과 같은 오너일가에 빈번한 횡령·배임 사건 등이, 후자는 대규모 자금력이 필요한 의사결정을 보다 공격적으로 단행해 신성장동력을 찾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SK그룹은 지난해 상당히 힘든 한해를 보냈다. 그룹 매출 규모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에너지·화학 분야는 셰일가스, 유가하락에 부딪혀 활기를 잃었다. SK하이닉스 외에는 대부분 사업이 후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무언가 명확한, 눈에 띄는 결단을 내린 것은 별로 없었다. 최 회장의 빈자리가 절실히 느껴진 한해였다.
이런 상황에서 SKB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최 회장 사면론에 찬물을 끼얹는 언행이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봤으면 한다. 그토록 원했던 정규직으로서 설 자리도 SK그룹이 잘돼야 생길 수 있다. 최 회장을 공격하는 것으로 눈길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자해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생에서 주역으로 등장한 오상식 차장은 낙하산으로 들어와 미운털이 박힌 장그래 사원이 "기회를 달라"고 말하자 이런 말을 한다. "기회도 자격이 있는 사람한테나 주는 것이다."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SKB 노조원들 역시 이 말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위기에 빠진 그룹은 오너 이슈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걸 약점으로 삼아 이익을 얻어내려 한다면 이 역시 자격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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