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3월 08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은행에서 고객들의 재산승계에 대한 상담을 하다 보면 자녀를 비롯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을 많이 접하게 된다. 본인들의 재혼과 그로 인한 상속갈등, 자녀들의 이혼 또는 본인들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자식들로 인해 며느리, 사위와의 갈등문제, 자신들의 건강악화로 인한 미성년자녀 양육문제 등이 대표적인 유형이다.
한편으로는 100세 시대의 건강한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상속보다는 증여를 통한 절세적 효과를 추구하는 자산승계가 늘어나고 있다. 2010년 12조 원대의 증여세 수준이 2014년 18조 원을 넘어선 통계자료만 보더라도 증여를 이용해 자산승계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상담을 하면서 증여를 주저하는 고령 고객들을 만나게 된다. 그 이유는 증여 이후에 자녀로부터 홀대 당하지는 않을까, 미리 준 재산 때문에 근로의욕이 떨어지거나 사업자금으로 써버리고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등의 염려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실제 현실로도 잘 나타난다.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부모의 재산을 증여받고 난 뒤, 부모을 홀대하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 현실에 대해 법원에서는 중요한 기준을 세우는 판례를 제시했다.
지난 2015년 12월 대법원은 70대 후반의 부모가 자녀에게 2003년 증여한 재산을 다시 부모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을 냈다. 증여의 조건으로 부모를 충실히 봉양하고 그 약속을 어기면 재산증여는 없던 일로 하겠다는 각서의 내용을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들은 2003년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증여받으며 제대로 봉양하겠다는 일종의 '효도각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증여 후 한 집에 살면서도 식사조차 같이 하지 않고 집안살림을 모친의 부담으로 하고 요양원으로 가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등의 학대가 커지면서부터였다. 결국 부모는 증여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부모가 아들과 맺은 증여 계약은 적법하게 해제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아들은 아버지에게 집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부양료 청구 소송은 2005년 151건에서 지난해 262건으로 10년 새 1.7배가 증가했다. 대부분 부모가 자녀를 상대로 낸 소송으로 각박해진 우리사회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고령층의 심리변화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위 대법원의 판례는 2015년 9월 발의된 소위 '불효자방지법'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안의 주요내용으로는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지 않을 경우 이를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 개정과 부모를 폭행하는 존속폭행의 경우 친고죄와 반(反)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이다.
민법 개정안은 자녀가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이미 이행한 증여분'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부모가 생계 곤란의 고통을 겪을 때도 증여분을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 학대 외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로 인정될 때 증여를 취소할 수 있게 하고, 부모가 증여취소를 요구할 수 있는 시점도 자식이 홀대한다는 사실을 안 지 6개월 이내에서 2년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본 법안에 대해 여러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뿌리인 효(孝)조차 계약으로 해야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수도 있고,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냉정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1위를 자랑하는 만큼 늘어나는 고령층의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풀어가고 규범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불효자방지법은 이미 재산을 증여한 후 자녀가 봉양하지 않는 문제가 불거질 때 효력이 발생한다. 즉 이 때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물론 증여재산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부모에게 계약 상의 봉양을 하게 된다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이미 재산을 상당부분 처분한 후라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따라서 불효자방지법 외 다른 방법도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신탁'이다. 우선 생전증여방식으로 자녀 앞 현금흐름을 만들어주고 절세 혜택을 받는다. 이후 자녀가 증여받은 재산을 대상으로 수탁자와 신탁계약을 맺고 그 재산의 처분, 관리 등의 구체적인 방식은 부모와 협의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수탁자는 계약의 내용이 충족될 경우에만 재산의 처분할 수 있어 관리의 문제에 있어 객관화 시킬 수 있다.
이렇게 신탁을 활용하면 수탁자는 계약의 내용이 충족 될 경우에만 재산을 처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증여재산 관리가 객관적으로 처리되는 효과가 있다. 이는 효행을 전제로 하는 계약의 이행보다 순수하게 재산적 내용에 한해 관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불효자방지법을 활용하는 것 보다 오히려 더 마음 편한 선택일 수 있다.
<배정식 KEB 하나은행 동탄지점 마케팅부장>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금융법무과정(신탁법)
[저서]'신탁 상속'(재산 분쟁 없는 희망 상속 플랜)
前 하나은행 신탁부 상속신탁팀장
現 하나은행 동탄지점 마케팅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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