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8월 29일 10: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소로 '직립보행'을 꼽는 인류학자가 많다. 손을 사용한다거나 높은 지능의 뇌보다 직립보행이 더 중요한 이유는 직립보행을 해야만 손을 사용할 수도 있고, 도구의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의 직립보행은 몇 가지 문제점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직립보행으로 여성이 출산과 관련된 해부학적 구조가 변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산도(産道 태아가 나오는 길)가 좁아져 더 이상 태아를 뱃속에 오랫동안 키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아기를 미숙한 상태에서 낳은 후 오랜 기간 양육하는 방식으로 인류가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따뜻한 단어 '가족'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다. 인류는 남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출산과 양육을 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의 중요성도 더욱 절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결혼이라는 제도는 없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보다 강제하고 강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장치로서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요즘 현명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우생학적으로 결코 개체번식에 도움을 주지 않는 환경이기 때문이란다. 더 현명한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이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불행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란다. 실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상당수의 한국여성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심지어 다시 결혼해야 한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성도 있다.
"결혼전과 비교해 삶이 더 행복해졌는가?"라는 물음에 '아주 그렇다'라고 답을 한 남성은 39%였지만, 여성은 19%로 절반에 불과했다. 또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 인가?'를 묻자, 남녀 모두 '아이가 사랑스러울 때'라는 답이 가장 많았지만, 여성들에게 결혼생활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소로 '출산과 육아'가 꼽혔다. 배우자보다 아이가 행복감의 원천이지만, 출산과 육아 등으로 결혼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여성은 배우자가 아니라 결혼제도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여성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가 혼인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혼인율은 통계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혼인율은(인구 1천명당 혼인건수) 5.9건으로 1980년 10.6건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다. 혼인율이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초혼연령은 남자가 32.6세로 10년전에 비해 거의 두 살이 늘었으며, 여자의 평균초혼연령은 30.0세를 기록하여 사상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하였다. 최근과 같은 추세라면 10년에 두 살꼴로 늘어 10년후인 2025년쯤엔 남자 35세, 여자 32세가 결혼의 적령기가 될 전망이다.
한편 결혼의 해체, 즉 이혼율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조이혼율은 2.1건으로 1997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2003년 3.4건으로 사상최고를 기록한 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이혼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정(情) 때문에'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라면, 이혼율의 감소는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방증으로 해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균적인 결혼연령의 증가와 마찬가지로 이혼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남자의 평균이혼연령은 46.9세, 여자는 43.3세로 10년전에 비해 대략 5살 정도가 높아졌다. 결혼연령, 이혼연령 모두 고령화에 영향을 받아 나이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전체 이혼율은 감소하고 있는데, 황혼이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생활을 20년이상 지속한 부부의 이혼이 전체이혼의 삼분의 일(29.9%)을 차지한다. 과거에는 혼인지속기간이 길수록 이혼율이 낮았지만 최근에는 혼인기간이 4년이하의 이혼보다 20년이상의 이혼이 더 많다는 점이다. 즉, 젊은 부부보다 나이든 부부의 이혼이 많다는 의미이다.
특히 50대 이상 남성의 이혼이 10년전(2005년) 2만 2,800명 수준이었으나 2015년에는 4만 400명으로 거의 두 배나 증가하였으며, 50대 이상 여성이혼의 경우 10년전 1만 2,800명에서 지난해 2만 7700명으로 2.5배가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이혼가정 중 미성년자녀가 없는 경우의 비중이 2015년에는 절반을 넘어섰는데, 이는 자녀들이 장성하여 미성년자가 없는 가정, 즉 황혼이혼이 크게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황혼이혼을 많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으로 부부 중 경제력이 없는 사람이 노후빈곤으로 빠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 때문이었다. 실제 가계소득이 남성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황혼이혼은 여성에게 커다란 용기이자 도전이었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이유로, 아직 유교적 전통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친척과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과 이웃에서 황혼이혼은 한국정서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이벤트로 인식되었다. 세 번째는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경제적 자립이 확보되면서, 경제적 이유들이 해소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이혼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벤트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시선에서도 대체로 자유로워졌고, 본인의 자존감이 주변의 시선보다 더욱 중요시 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남은 여생에 대한 삶의 가치에 대해 자식들과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황혼이혼'을 좀 더 쉽게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황혼이혼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황혼결혼의 증가세로 이어지고 있다. 전체 50대 이상 남성의 혼인이 10년전(2005년) 1만 6,500명 수준이었으나 2015년에는 2만 200명으로 22% 증가하였으며, 50대 이상 여성의 경우 10년전 8,000명에서 1만 4,600명으로 무려 83%나 증가하였다. 이것을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황혼이혼한 사람의 절반이(남성 50%, 여성 47%) 황혼결혼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50대이상 남성의 경우, 황혼이혼 4만명에 황혼결혼 2만명, 여성은 황혼이혼 2만8000명에 황혼결혼 1만4000명)
이렇게 결혼과 관련하여 과거와 다른 사회적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황혼이혼과 황혼결혼의 증가는 기대수명의 연장,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위상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기존의 결혼제도를 벗어나려는 '졸혼'(卒婚, そつこん 소쯔콘)이 유행하고 있다. 법적 혼인관계와 우호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결혼이 가지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졸업한다는 의미에서 졸혼이라고 한다. 법적혼인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혼과 다르고, 좋은 감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별거와 다르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이혼, 별거, 졸혼과 또 다른 형태의 결혼 대안이 나타나고 있는데, 소위 '별거 동침'이라고 부르는 '사르보'(sarbo)이다.
스웨덴에서는 '각자 자신의 집에 살면서 사실상 부부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르보가 결혼제도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르보는 '따로 살지만 같이 지내는' 관계이다. 법적으로는 혼인관계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는 사실상 배우자역할을 하는 부부관계이다. 다만 서로의 편의를 위하여 같이 살지 않고, 각자 집에서 산다. 동거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지만, 여성은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의무에서 해방되고, 남성들도 재산문제 등에서 자유로운 전략적 만남이다.
결혼제도에 대한 도전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이내에 결혼제도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조차 황혼이혼과 황혼결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자연스럽게 100세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이 62세이던 1970년에는 20대에 결혼하고 50세에 은퇴하고, 60세에 환갑잔치를 겨우 치르고 몇 년 인생을 정리하다가 사망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이었다. 그 시절에는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30년 안팎이었지만, 100세시대에는 70년을 같은 배우자와 살아가야 한다.
100세이상 장수인(Centenarian)이 많이 사는 블루존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사르데냐나 코스타리카의 니코야반도 등에서 관찰되는 장수요인 중에 하나는 가족, 특히 배우자와 같이 사는 것이다. 인간 수명을 결정하는 주요인자는 유전자가 아니라 생활양식이다. 생활양식 중 가장 근간을 이루는 것이 가족, 가정에서 유대감이고, 그 뿌리는 결혼제도이다. 결혼제도에 대한 후회와 회의가 이혼을 불러왔고, 이제 이혼을 넘어서 황혼결혼으로, 더 나아가 졸혼과 사르보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사회적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가족이 우리행복의 뿌리이며 '그 지긋지긋한' 결혼이 기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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