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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손실 불안'에 갇힌 퇴직연금 제도 [thebell note]

최은진 기자공개 2017-10-30 08:56:24

이 기사는 2017년 10월 27일 07: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넛지(nudge)'라는 책으로 유명한 행동경제학의 제창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행동경제학은 경제적 행위를 하는 인간을 주류 경제학과는 다르게 합리적이지 않다고 가정한다. 이 때문에 줄곧 주류 경제학으로부터 외면 받으며 비주류 학문으로 통했다.

하지만 인간을 합리적으로 상정해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는 경제현상들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행동경제학자가 경제학 최고의 상을 거머쥐게 됐다. 경제영역에서도 합리성보다 인간 심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심리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앞으로 경제정책들도 상당히 변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활용해 제도를 재설계하고 있다. 경제정책은 인간의 어떤 심리를 자극하고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한 '선택의 영역'인만큼 행동경제학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금융정책에도 행동경제학에 기반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분야가 있다. 바로 퇴직연금 제도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합리적으로 '높은 이익'을 위해 실적배당형상품과 원리금보장상품에 적절히 분산 투자해야 옳지만 현실은 적립금 95%가 예적금에 쏠려 있다. 원금 손실에 대한 불안한 심리 탓이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고작 1~2%에 그친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불안한 심리가 불안한 수익률로 이어진 셈이다. 금융사들이 아무리 가입자 교육을 확대하고 마케팅을 강화해도 10년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공은 정책으로 넘어갔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디폴트옵션, 기금형 제도는 '가입자 의사와 상관없이 적립금을 운용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가입자를 합리적이지 않은 주체로 본 셈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수년 간 논의를 거쳤으나 현실화 되지 못하고 있다. 가입자들만큼 정책당국도 원금 손실을 불안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금 손실 가능성과 제도가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것 중 어느 것에 대한 책임이 더 무거운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0년간 가입자의 합리성에 기대서 수익률을 끌어 올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경제 효용을 높인다'는 리처드 세일러 교수의 말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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