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공판서 2시간 남짓 마른침만...'안도 한숨' 실형 위기 벗어나, 법원 "지배구조 투명성 노력 정상참작"
노아름 기자공개 2017-12-22 18:13:33
이 기사는 2017년 12월 22일 1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시간 남짓 물 한 모금 들이켜지 않았고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두 손을 차분하게 모으고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연신 마른 침만 삼켰다.밀폐된 공간이 힘겨웠기 때문일까. 아버지가 세 차례나 자리를 비웠지만 출입구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전방만 응시했다.
통역을 배석하고 앉은 형은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돌처럼 굳어있었던 건 그뿐이었다. 54페이지에 달하는 선고문은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집행유예' 네 글자가 선명히 들리는 순간 겨우 몸에 힘을 풀 수 있었다. 재계 5위 그룹 수장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얘기다.
2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312호는 약 2시간가량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이날은 경영비리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 회장 등 총수 일가에 대한 1심 재판의 선고공판이 열렸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찌감치 재판장에 도착해 자리했다. 뒤이어 채정병 전 롯데카드 사장, 황각규 롯데지주 공동대표, 소진세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 등이 배석했다. 신 회장 또한 재판 10분 전 자리했다. 회색 수의를 입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재판 직전 도착하자 황 대표이사 등 전문경영인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신 총괄회장은 보라색 목도리를 목에 두른 채 휠체어에 의지해 출석했다. 이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신 총괄회장은 수행원에게 자주 귓속말을 건넸고 건강상의 이유로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신 회장에 대해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신 총괄회장은 징역 4년과 벌금 35억 원이 선고됐다. 다만 고령인 점을 감안해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신 전 이사장은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반면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신 전 부회장과 황 공동대표, 소 위원장 등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간 재계의 관심은 신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 여부에 모였다. 지난 10월 결심공판에서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은 징역 10년, 신 전 롯데장학재단 이시장 및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는 징역 7년, 신 전 부회장은 징역 5년을 각각 구형받았다. 이외에도 전문경영인에게는 각각 징역 5년이 구형됐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검찰은 앞서 신 회장이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코리아세븐, 롯데닷컴 등 계열사를 동원해 회사에 471억 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혐의가 있다고 봤다. 이외에도 검찰은 신 회장이 신 전 부회장(391억 원), 서 씨 모녀(117억 원) 등에게 총 508억 원의 부당급여를 지급했으며,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신 전 이사장 등에게 몰아줘 회사에 774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롯데시네마 매점 관련해서는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 등에 모두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신 전 회장과 서미경 씨에 대한 급여 지급에 대해서는 신 총괄회장 부자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롯데건설에 재직하지 않았으나 급여를 받은 신유미 씨에 대해서는 신 회장에 죄가 있다고 봤다.
금융계열사인 롯데피에스넷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과 관련한 일련의 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2건(영화관 매점 임대, 신유미 씨 부당급여 지급)의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징역 1년 8개월이 향후 2년 간 집행 유예됐다.
김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를 밝히며 "기업인으로서 책임을 외면하고 그룹의 자산을 동원해 일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임직원 및 채권자, 주주뿐만 아니라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유무형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꼬집으면서도 "소유와 경영을 일치시키는 원칙이 롯데 성장에 원동력이 된 점을 양형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고인 신동빈이 아버지의 뜻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하더라도 지위와 책임 무겁게 여겼어야한다"며 "다만 롯데지주를 출범시켜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참작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 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분리해 기업 활동을 못하게 하기보다는 국가 발전에 기여하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이후 14개월 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롯데그룹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총수 유고 위기에 몰렸던 롯데그룹은 신 회장이 실형 집행 위기에서 벗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롯데그룹은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더욱 합심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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