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1월 04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11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이경섭 전 농협은행장과 통화를 했을 때다. 당시 이경섭 전 행장은 기자에게 "임기 2년은 짧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중장기 전략을 갖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또 어떤 의미에서 연임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들렸다. 그로부터 두 달 가량이 지난 요즘, 이경섭 전 행장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새로운 농협은행 수장으로 선임된 이대훈 행장을 지켜보면서다.그나마 2년으로 여겨졌던 농협은행장 임기가 1년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장 임기가 1년으로 정해진 것은 2012년 농협금융그룹 출범 이후 처음이다. 타금융그룹과 비교해도 은행장 임기가 1년인 곳은 농협은행이 유일하다.
은행장 임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농협금융 계열사인 농협손해보험·농협생명·농협캐피탈 최고경영자(CEO) 임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농협금융지주 부사장, 농협은행 부행장 등 임원들의 임기도 2년에서 1년으로 줄었다. 농협금융의 인사 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농협금융이 이대훈 행장을 비롯해 계열사 CEO, 임원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정한 이유는 수익 때문이다. 범농협 수익센터라는 농협금융의 존재 목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택한 방안이라는 것. 지주사 산하 계열사의 순익 극대화를 위한 조치인 셈이다. 결국 이대훈 행장이 내년에도 행장직을 유지하기 위해선 경영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문제는 1년에 불과한 은행장 임기는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매년 경영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만큼 단기 성과를 내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모태)을 발표하고 은행장 등 금융사 경영진의 최초 임기를 2년 보장하도록 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다보면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을 망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국내 은행들의 수익 악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농협은행은 그동안 쌓였던 조선업 부실 등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빅배스(big bath, 부실 털어내기)를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5700억 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쟁은행과 비교해 아직은 저조한 실적이다.
이 때문에 2020년까지 순이익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멀게만 느껴질 수 있고, 수익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농협은행만의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몇 년 후 1년 임기제를 도입한 농협금융의 인사 정책 변화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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