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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채용비리 논란]이광구는 왜 구속되지 않았나③특혜 과정서 개입 입증 어려워…CEO 겨냥한 금감원과 시각 차

윤지혜 기자/ 안경주 기자공개 2018-02-20 14:17:00

[편집자주]

은행 채용비리 사건이 법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업무방해죄로 불구속기소됐고 검찰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5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 의심사례를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공정한 입사 경쟁을 저해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은행이지만 입사규칙의 자율 제정 권한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옹호론이 만만치 않다. 채용비리 정국에 들어선 은행권에서 벌어지는 법적논란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8년 02월 13일 14: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작년 10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채용 추천인 명단'을 공개했다. 우리은행이 별도의 추천인 명단을 만들고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금융감독원은 이 전 행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감원은 전 은행권을 대상으로 채용비리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1월 하나·국민·대구·부산·광주은행 등 5개 은행에 대해 채용비리가 의심된다며 검찰에 수사참고자료를 넘겼다. 특히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최고경영자(CEO)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 안팎에선 이 전 행장의 재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금융권 채용비리 의혹 수사 등에서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 전 행장의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해 불구속기소로 수사를 마무리하고 재판부에 넘겼다. 첫 공판은 내달 12일 열린다.

검찰은 당초 이 전 행장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하고자 했다. 지난달 채용 청탁을 받아준 혐의(업무방해)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전 행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업계 안팎에선 이 전 행장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된데 주목하고 있다. 우선 재판부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과 법적 다툼여지가 남아있다고 봤다. CEO가 최종 인사권을 지녔더라도 현행법상 처벌 대상으로 지목하기 어렵고 채용 특혜 입증 또한 쉽지 않다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은행권 채용비리 척격을 주장하며 금융사 CEO 해임, 경영승계 점검 등 은행 경영진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금감원과 미묘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최종진 서울북부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 전 행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에 의한 범죄혐의 소명정도 및 이에 대한 다툼의 여지, 이 전 행장이 이 사건을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구속할 사유 내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채용비리로 피고의 범죄혐의가 소명되기 위해서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사안이 있어야 한다. 즉, 누군가 채용 특혜를 받았다면 회사나 기관의 고위직 인사가 채용 담당자나 면접위원의 적법한 업무절차를 방해한 것으로 간주해 죄를 묻는 것이다.

해당 회사의 직원채용에서 탈락한 지원자를 피해자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위직 임원이나 CEO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또 인사와 관련해 어떻게 부하직원을 압박했는지 등에 대한 정황 및 참고 증언, 자료를 중심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다. 검찰이 금감원의 채용비리에 연루됐던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집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 전 행장의 경우도 업무상 피해를 두고 다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 아닌 일반 민간기업에서 채용비리가 일어나더라도 동일하다. 오히려 민간기업의 경우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아는 인물이거나 회사 경영에 필요한 인재를 채용했다면 이를 '비리'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기 때문에 더 처벌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채용비리를 사기나 뇌물죄로 본 사례는 없다. 사기나 뇌물죄가 되려면 누군가 채용비리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익을 편취하고 채용자와 연관있는 인물이 부정한 청탁을 했음이 입증돼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규명이 쉽지 않다.

여기에 법원이 밝힌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살펴보면 설사 업무방행죄를 적용하더라도 법률적으로 구속까지 시킬만한 상당성은 인정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수사에서 구속과 불구속이 갖는 의미는 차이가 있다. 법원이 구속 여부를 정할 때 피의자의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가능성 등 외에 '실형 선고 가능성'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3개월간 수사를 했지만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있다.

국내 한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재판을 앞두고 있는 사안이라 판결에 대한 전망을 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로 해석한다"며 "1심에서 형을 집행유예할만한 사안으로 보거나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전 행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금융사 CEO가 최종 인사권을 지녔더라도 정황만 가지고 채용 과정에서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한 개입이 있었는지 밝혀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채용비리와 관련해 회사의 한 개인이 관여한건지, 아니면 회사 전반적인 차원에서 특혜가 이뤄진 건지에 대한 법률적인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업무방해죄로 인한 형사책임은 구체적으로 행위를 한 사람에게만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채용관련 지시를 누가 독단적으로 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며 "채용 지시자가 회장이나 행장으로 드러난다 해도 금융사 CEO로서 인재 가인드라인을 제시한건지, 실질적으로 채용 과정에서 부정하게 개입한건지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혐의를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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