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해체, 산업은행 책임은 없나 [아시아나항공 M&A] 경영능력 부재 불구 수차례 금호그룹 구원투수 역할
안경주 기자공개 2019-04-22 10:40:00
이 기사는 2019년 04월 18일 08: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사실상 해체된다.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떨어져 나가면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금호그룹은 중견그룹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시장 안팎에선 '그룹 재건'의 꿈을 키우며 무리한 인수전에 나선 박삼구 전 회장의 '욕심'과 경영능력 부재를 그룹 해체의 원인으로 꼽는다. 무려 10조원을 투자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인수하면서 그룹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수긍되는 부분이다.다만 일련의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호그룹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탓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부실의 책임 논란에서 산업은행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금호그룹의 위기는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에서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박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에만 6조4000억원을 들였다. 적정가격을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일반적으로 주식이 잘 분산된 기업의 경우 30% 정도의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만 보유하고도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다.
이를 감안하면 대우건설의 경우 40~50%의 지분만 확보해도 됐지만 금호그룹은 72%나 되는 정부(캠코) 지분 전량을 떠안았다. 그러다보니 인수자금 마련에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고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3조원 이상의 자금을 차입했다.
금호그룹의 M&A 욕심은 멈추지 않았다. 2008년엔 대한통운을 4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대한통운 인수자금도 대부분 차입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가 떨어지면서 결국 인수 3년만인 2009년 대우건설을 되팔 수밖에 없었다. 대한통운도 이듬해 매물로 내놓았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산업은행의 행보다. 대우건설, 금호생명(현 KDB생명) 등을 떠안으면서 금호그룹의 구원투수로 수 차례 나선 것이다. 대우건설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은행은 2009년 대우건설 매각 당시 매각주관사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원매자의 인수금융 지원을 위해 매각주관사 업무를 포기했다. 당시 산업은행의 인수금융 지원이 없으면 M&A가 성사될 수 없었다. 결국 금호그룹을 살리기 위해 산업은행이 나선 셈이다.
박 전 회장은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하면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한다. 이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009년 12월 금호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했다. 지주회사격인 금호산업을 비롯해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는다.
당시 박 전 회장은 민유성씨가 회장으로 재직하던 산업은행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그룹 재건에 나섰다. 2010년 11월 금호그룹 회장에 공식 복귀했다. 2013년 8월과 2014년 3월에는 각각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특히 박 전 회장에서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면서 그룹을 재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줬다. 그 결과, 2015년 11월에 자금조달계획안을 채권단으로부터 승인받으면서 6년 만에 그룹을 되찾게 됐다.
당시 채권단 실무를 맡았던 관계자는 "채권단 결정에 있어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의지가 중요했다"며 "박 회장의 경영복귀를 두고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사실상 산업은행의 뜻대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룹 경영 악화에 박 전 회장의 책임이 크다는 인식에 채권단 내부에선 그의 복귀를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들어갔던 금호그룹 계열사들도 조기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된다. 워크아웃(금호산업·금호타이어)과 자율협약(아시아나항공)을 조기 졸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산업은행의 의지가 강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산업은행의 행보는 과거 STX그룹이나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였던 모습과 상반된다. 산업은행은 2014년 STX조선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강 전 회장을 포함한 STX중공업 전·현직 임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동부제철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대주주에 대한 100대 1의 감자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김준기 회장은 동부제철에 대한 경영권을 모두 상실했다. 이후 동부건설과 동부익스프레스, 동부특수강 등 주요 제조업체들이 매각되거나 워크아웃으로 그룹에서 떨어져나갔다. 당시 산업은행은 김 회장에게 우선매수권도 주지 않았다.
2017년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 '상표권' 문제로 박 전 회장과 산업은행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그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깨졌다. 박 전 회장이 당시 채권단에 '금호타이어 인수전 참여 위해 컨소시엄 구성 허용' 요청했지만 거절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당시 박 회장은 이미 경영 복귀를 마친 상태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퇴진했던 박 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당사자는 바로 산업은행"이라며 "당시에 정치적 입김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아시아나항공 부실의 원인을 박 전 회장의 경영능력 부재로 꼽는다면, 산업은행 역시 그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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