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6월 26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선두 주자들의 축적의 시간을 빠르게 따라잡는데 집중하고 있는데, 한국은 삼성전자를 두고 과거 일에 대한 추적의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축적의 시간'은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 석학이 공동저자로 참여해 2015년 발간한 저서다. 한국 제조업 전반의 위기를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았다. 일부 교수는 이 저서에서 한국은 자본과 사람이 많지 않아 시간을 축적해 기술을 쌓았다면 중국은 반대로 풍부한 자본과 사람을 쌓아 시간을 벌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한국이 과거 10년에 걸쳐 이룬 기술을 중국은 3년만에 해낼 수 있었던 저력이 여기에서 기인했다고 봤다.
최근 만난 모 전자업체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처한 현실을 저서 축적의 시간에 빗대어 앞서 말을 꺼냈다.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반도체 산업 시작부터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동시에 투입했다. 그만큼 속도가 났다. 지난 몇 년 새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위협적이었다. 반면 우리는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울러 당국이 관련 산업 선두 주자인 삼성전자의 과거 흠집을 추적하는 데만 온 힘을 쏟고 있다는 비판어린 시선이다.
사실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이를 두고 느끼는 가장 큰 부담은 불확실한 상황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점으로 보인다.
"같이 근무하던 선·후배, 동료가 참고인이 돼 검찰을 왔다 갔다 한다. 어제까지 근무지에서 눈을 마주치며 일했던 임원은 갑자기 구치소에 수감됐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 수성과 투자를 요구하는데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혼나야 하는 건 알겠는데 훈계가 언제 끝날지를 알 수가 없다. 다들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지 않겠느냐."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지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각종 논란의 결론이라도 서둘러 내려줬으면 하는 게 삼성 내부 관계자들 다수의 바람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수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수사,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대법원 판결 지연 등등. 2년 넘는 기간 동안 당국이 명확한 결론을 내려준 사안이 별로 없다. 파고 또 파고, 새로운 이슈들만 계속해서 내놨다. 이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업계 관측도 있다.
이쯤에서 당국이 직시했으면 하는 일이 있다.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호들갑이 아니다. D램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전담하는 IM부문은 분위기가 괜찮지만 반도체에 비하면 수익 성과가 애초 크지 않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까지 겹쳤다. 미국은 삼성전자 반도체 주요 납품처인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이 한발 더 나아가 중국과 단절을 국내 기업에 요청하면 삼성전자는 난감한 처지가 된다. 단순 수출 문제를 떠나서 중국 현지에 세워둔 반도체 공장을 가동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시총 272조원,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1등 기업 삼성전자가 처한 현실이다. 과거사에 갇힌 기간이 길어질 수록 삼성전자의 미래를 대비할 시간도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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