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8월 20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경제의 화두 중 하나는 스타트업(창업)이다.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액이 1조8996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전체 투자액 3조4249억원의 절반(55.5%)을 넘어섰고, 현재 상승세를 고려하면 올해 전체 투자액은 4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명실상부한 '벤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정부도 분명 이 같은 트렌드를 인식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2의 벤처 붐이 가시화됐다"고 자평하고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예비 유니콘 기업을 선정해 정책자금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벤처투자 규모가 늘고 정부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우선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업계의 분위기는 마냥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자금은 넘치지만 투자할 벤처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A벤처캐피탈 대표는 "투자를 요청하는 기업이 많지만 실사를 해보면 마땅한 곳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투자할 벤처기업이 없을까?. 벤처투자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벤처기업들이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 기업들이 급격히 늘었지만 기술에 기반을 둔 기업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조·IT 등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 투자를 늘리고 싶지만 투자를 요청해오는 곳은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부문에 특화된 곳들이 대다수다. B벤처캐피탈 대표는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이라고 하지만 핵심기술이 없는 곳도 많다"며 "아무래도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올해 상반기 ICT제조부문 투자 비중은 2.9%로 지난해 4.3%와 비교하면 1.3%포인트 감소했다. 전기·기계·장비부문 투자 비중도 작년과 비교해 3.6%포인트 하락한 5.1%를 기록했다. 화학·소재부문 투자 비중도 비슷한 하락폭을 보였다. 반면 바이오·의료, 영상·공연·음반, 유통·서비스 등의 투자 비중은 커졌다.
그렇다면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뭘까. 벤처캐피탈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가장 큰 이유로 당장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플랫폼 기반 사업의 경우 매출 등 가시적 성과를 내서 쉽게 투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제조·IT 등 기술 기반 사업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기술보증기금의 예비 유니콘 기업 선정 결과가 이 같은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7월 예비 유니콘 기업 13곳을 선정해 최대 100억원까지 지원을 했는데 당시 플랫폼 또는 유통 기반의 벤처기업들이 대다수 선정된 탓이다.
물론 분야를 막론하고 유니콘 기업의 탄생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비전 있는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이 나오지 않으면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진화하고 있는 선진국과의 격차만 더욱 벌어진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정부가 핵심기술 확보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고 밝히면서 기술개발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이 나오지 않으면 이마저도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모험자본의 꽃으로 불리는 벤처캐피탈이 투자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그래야 '제2의 벤처 붐'을 넘어 기술 기반 벤처기업의 전성시대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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