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하고 통큰' 매니저 박건영 브레인운용 대표 [매니저 프로파일]대형 펀드·주식 ‘특화’, 모멘텀 발굴 능력 '독보적'...액티브 펀드 ‘돌풍’ 주역
김수정 기자공개 2020-02-04 08:37:12
이 기사는 2020년 01월 31일 10: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사진)의 운용 역량은 대규모 자금을 굴릴 때 십분 발휘된다. 한국을 대표할만한 큰 기업이 긍정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할 때, 그 변화의 초입을 캐치하고 베팅해 굵직한 결실을 맺어왔다. 그래서 그의 전성기는 공모펀드 시장 황금기, 한국 경제 고도 성장기와 겹쳐진다.액티브 펀드가 고공행진을 하고 스타 매니저가 곳곳에서 등장하던 와중에도 박 대표의 퍼포먼스는 독보적이었다. 그가 손대는 곳마다 ‘돌풍’이란 수식어가 뒤따랐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펀드 매니저가 됐음에도 일약 스타 매니저 반열에 올라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다.
◇IMF 계기로 주식 눈 떠…기업금융→자산운용 '전직'
박 대표는 기업금융 전문 금융사인 산은캐피탈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30대 중반에 펀드매니저로 방향을 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펀드매니저 전환을 선언한 지 2년여 만에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디스커버리’ ‘인디펜던스’ 등 대표 펀드들의 1호 펀드 운용을 맡아 ‘대박’을 쳤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첫 공모펀드 ‘칭기스칸’이 금융위기 속에서 6개월 만에 코스피를 24% 아웃퍼폼한 것도 그의 성과다.
박 대표는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당초 그의 꿈은 펀드 매니저가 아니었다. 중학생이던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자연스레 부자가 돼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상경대 진학을 결심한 것도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였다. 1993년 졸업과 동시에 산은캐피탈에 입사해 주로 기업 대출을 위한 분석·심사 업무를 했다.
그가 주식을 조우하고 일생일대 전환점을 맞이한 건 국제통화기금(IMF)의 위기를 겪으면서다. 국가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추락하고 국민들이 직장을 잃었다. 몇 만원대를 호가하던 우량기업 주식들이 수백원짜리 동전주로 전락했다. 이 와중에 박 대표는 주가가 폭락한 기업 중 우량 기업을 골라 투자했다. 수년 간 기업과 산업을 분석하면서 터득한 통찰력에 대한 확신이 깔려 있었다. 주식 투자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 대표는 본인의 주식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결정적으로 그를 펀드 매니저의 길로 인도한 건 위기감이었다. IMF 사태가 수습되는 과정에 굴지의 기업들이 나가 떨어졌고 산은캐피탈도 부실 우려가 커져 갔다. 지금 몸 담은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고민하던 박 대표는 재능을 살려 새 길을 찾기로 했다. 정식으로 공부해 자격증을 땄고 펀드매니저로서 인생 제2 막을 열었다.
손 대는 펀드마다 수익률이 치솟았고 자금이 몰렸다. 박 대표가 2004년 7월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에 합류해 처음 맡은 건 디스커버리 1호다. 박 대표는 1년 동안 디스커버리를 운용하면서 60% 수익을 냈다. 이 기간 설정액은 3000억원 수준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간판 펀드였던 인디펜던스가 박 대표 손에 맡겨졌다. 그는 2년 간 73% 수익을 냈다. 운용 시작 당시 3000억원 수준이던 설정액은 1조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2007년 트러스톤자산운용(전 IMM투자자문)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황성택 전 사장과 손 잡았다. 16% 가량 지분 투자도 했다. 이듬해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첫 공모펀드 ‘칭기스칸’을 선보였다. 대표이사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박 대표는 이 펀드를 직접 운용해했다. 그가 운용한 이 펀드는 시장수익율을 24% 웃도는 성과를 냈다.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인 시기에 이같은 성과는 시장의 이목을 단숨에 끌었다.
◇금융위기 끝무렵 가능성 직감, 창업 결심
그의 두 번째 전환점도 위기 속에서 찾아왔다. “존 템플턴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완전히 망했을 때 일본에 투자했고 워렌 버핏은 미국 대공황 이후 부도 난 기업들이 널려 있을 때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해서 크게 벌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IMF 직후 회사를 차렸다. 큰 투자자는 항상 경기가 최악일 때,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움직인다.” 박 대표가 자주 인용하는 사례다.
박 대표는 성장 가도에 막 진입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본인 철학을 100% 녹여낸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결정적으로 그가 뛰쳐나올 수 있었던 건 곧 금융위기가 끝자락에 도달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말 경기 패러다임이 곧 호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투자를 시작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 또 하나 그가 결심을 굳히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중국 국제금융학자 쑹훙빙의 저서 ‘화폐전쟁’이다. 이 책을 읽고 돈의 흐름을 좌우하는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2008년 말 트러스톤자산운용을 나와 이듬해 브레인투자자문을 설립했다. 독립한 이후에도 박 대표의 대박 행진은 이어졌다. 브레인투자자문은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랩어카운트에 투자자문을 제공했는데 이 자문형랩이 입소문을 타면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자문형랩 계약 잔고는 설립 2년 만에 6조원까지 불어났다. 당시 국내 자문형랩 잔고는 통틀어 10조원 수준이었다. 브레인 자문형랩이 전체 시장의 과반을 점유했던 셈이다.
박 대표는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이듬해인 2012년 9월 브레인투자자문을 브레인자산운용으로 전환하고 헤지펀드 ‘백두’를 론칭했다. 백두는 설정 이듬해 연 수익률 23%를 기록하면서 전체 헤지펀드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과를 입증했다. 2013년 3월 내놓은 ‘태백’은 기관 자금을 쓸어 담으면서 당초 목표 설정액 2000억원이 1개월도 안 돼 동났다. 두 펀드는 각각 설정액이 4000억원을 넘나들 정도로 커졌고 단숨에 국내 최대 헤지펀드로 자리매김했다. 운용사 전환 1년여 만에 브레인자산운용은 삼성자산운용과 더불어 헤지펀드 시장을 양분하는 메인 플레이어로 군림했다.
◇대형주 모멘텀 포착, 길고 통큰 투자
박 대표의 투자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내 경제를 주도하는 대형 기업에 긴 호흡으로 투자해 크게 버는 스타일이다. GDP 기여도가 큰 주도 산업이 성장할수록, 펀드에 큰 자금이 들어올수록 운용 역량을 200% 발휘한다. 미래에셋에서 이름을 날렸던 2004~2007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5~7%를 오갔고 조선·철강이라는 대형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현대미포조선,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대형 조선·철강 기업들이 초호황기를 누리면서 전체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당시 대형 조선·철강주 주가는 시장 평균을 5배 가량 아웃퍼폼했다. 덕분에 액티브 공모펀드에 물밀 듯 대규모 자금이 들어왔다. 2004년 8조원 수준이던 공모펀드 시장은 2008년 110조원으로 팽창했다. 미래에셋에만 50조원이 유입했다.
박 대표 본인도 “주도산업이 있으면 운용에 몰입해 자신 있게 투자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워낙 소신 있게 큰 돈을 굴렸던 까닭에 투자 성향이 매우 공격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틀린 판단에 대해선 빠르게 시인하는 유연함도 갖췄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의 평가는 “본인 판단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리면 신속한 전략 수정이 가능한 사람”이다.
미래 이익 증가 기업에 투자한다는 게 핵심 철학이다. 포트폴리오 기업 선정에 있어선 기업 실적의 긍정적 변화 시그널을 조기에 잡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위해 기업 펀더멘털과 이익 흐름, 산업 동향을 철저히 파악한다. 이를 통해 향후 이익 규모가 확연히 커질 기업, 투자 단계에서 회수 단계로 전환할 기업, 만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기업 등을 미리 골라낸다.
효율적 시장 가설을 지지한다. 이 가설은 지금의 주가는 현재로서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정보는 주가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논리다. 저평가도, 고평가도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박 대표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그러나 합리적 추론에 의해 도출한 가능성에 근거해 투자한다. 어떤 면에서는 시장에서 알려진 것과 다른 의미의 ‘가치 투자자’다.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진정한 가치로 규정하고 이러한 것들 것 제공하는 기업에 투자하고자 한다.
◇주말에도 ‘열공’…펀드와 ‘물아일체’
박 대표가 성장 모멘텀 보유 기업을 발굴하는 안목은 누구보다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식에 대한 감각도 좋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기업을 알아보는 통찰력은 공부 분석과 관찰에서 나온다. 박 대표 지인들이 그를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표현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다. 한때 박 대표 밑에서 말단 매니저로 일했던 관계자는 “토요일 저녁식사 시간 이후 사무실에 출근해 3~4시간씩 공부하고 귀가하던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회상했다.
전성기 땐 근무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애널리스트들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하고 의견을 나눴다.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조선·철강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주말에 박 대표랑 전화를 너무 많이 해서 아내가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봤을 정도”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또한 펀드 매니저가 펀드와 ‘물아일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늘의 뜻을 위탁 받아 전달하는 사제처럼 펀드매니저는 신성한 고객의 돈을 위탁 받아 운용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펀드 매니저가 본인의 일을 단순히 돈 벌기 위한 직업으로 봐선 안 된다. 나의 행복보다 펀드 성과를 훨씬 중요시 해야 한다”고 말한다. 펀드 성과가 안 좋을 땐 행복해해도 안 된다.
후배들에게도 편견 없이 믿어 주는 대신 본인만큼 높은 수준의 노력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엄격한 선배이자 스승이다. 스스로는 ‘악덕 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브레인에 몸 담았던 이들은 그의 하드 트레이닝이 이후 경력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스승의 날이면 여기저기서 전화 거는 후배가 수두룩하다.
브레인자산운용 출신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30대 중반 나이에 관련 경력도 없이 펀드매니저가 되고 싶어 여의도 최고로 손꼽히던 박 대표를 찾아갔는데 나를 믿어준 고마운 분”이라며 “임원들은 모두 반대했지만 박 대표는 기회를 줬고 그렇게 브레인에서 배운 경험은 이후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박현주 회장 존경…취미는 와인
존경하는 인물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다. 미래 산업 방향이나 흐름을 예측하는 통찰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능력도 높이 산다. 무엇보다도 증권사 평사원에서 시작해 굴지의 금융그룹을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존경할 만하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의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존경 받는, 상징적인 금융가가 한국에도 있어야 업계 종사자들이 더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최대 목표는 매니저로서 기존 펀드 운용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상장주식으로 운용하는 기존 펀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신규 자금을 안 받고 있다. 수익률이 고꾸라졌던 시기에도 믿고 남아준 기존 투자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단 취지다. 시범 삼아 외부 업체와 손잡고 인공지능(AI)에 본인의 투자 스타일을 학습시키는 실험적인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전성기의 박건영 스타일을 AI로 구현하는 게 목표다.
일 하지 않는 여유 시간에는 지인들과 골프 치는 것을 좋아한다. 주류 중에서는 와인을 즐긴다. 와인에 대한 소양도 상당하다. 와인 기준 최대 주량은 1L 정도다. 요즘엔 혼자 시간 보내는 방법을 찾다가 영화에 심취했다. 많으면 하루 서너 편을 몰아 볼 때도 있다. 최근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잡스’. 회사 창업자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여러 부분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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