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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운용사 열전]하나대체 정해성 본부장, '밸류애드' 특화 매니저IMF 직후 커리어 시작, '1세대 부동산 매니저'…관리부터 투자까지 '섭렵'

김수정 기자공개 2020-03-10 13:45:27

[편집자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잠했던 부동산펀드 시장은 2016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자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큰폭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르면 올해 부동산펀드 시장 규모는 1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더벨은 그동안 시장을 일궈온 부동산 운용사들과 그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키맨(Key man)들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3월 06일 10: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해성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부동산투자본부장(사진)은 부동산 투자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회자된다. 국내 1세대 부동산 매니저로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에서 부동산 금융투자가 막 개화하던 시절 누구보다 앞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인물이다.

시설관리(FM)부터 프로젝트관리(PM), 자산관리(AM), 그리고 투자까지 부동산 운용업의 전 영역을 경험한 흔치 않은 인물이다. 특히 딜 클로징 이후 이뤄지는 밸류애드(Value Add) 투자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서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잇따라 맡았다.

◇공기업에서 사회 첫 발…예기치 않은 부동산 입문

처음부터 작심하고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정 본부장은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결국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이던 직장을 2년 만에 스스로 나왔다.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모 재단과 인연이 닿아 사업 전반을 지원하는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여기서 재단 부동산 취득과 개발 업무까지 손을 뻗게 됐고 예상치 않게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 비로소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


그의 부동산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IMF 사태 이후다. 당시 부도를 맞거나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은 보유했던 부동산을 시장에 급히 내놨고 외국 자본은 이를 헐값에 쓸어 담았다. 평당 가격은 물론 공실률이나 임대료 같은 상업용 부동산 지표가 전무했던 시절이라 밸류에이션을 제대로 인정 받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외화가 절실했던 한국 입장에서도 외국 자본에 대한 부동산 매각은 훌륭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인식됐다. 매도 기업은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었고 매수자에게 부동산 인수 비용의 일부를 대출해준 국내 금융기관은 이자 수익을 거뒀다. 사실상 모두가 '윈윈'이었다.

당시 정 본부장은 투자 물건 발굴부터 후속 관리, 매각까지 전 과정을 중개·컨설팅하는 오퍼레이터로 활동했다. 외국계 금융사에 적을 뒀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딜의 매수 주체와 일대일로 접촉하는 개인 사업자에 가까웠다. 그가 주도한 첫 딜은 1999년 한국 휴렛팩커드(HP)의 고려증권 빌딩 매입이다. 현재 HP빌딩으로 불리는 여의도 랜드마크 건물이 당시 고려증권 사옥이었다. IMF를 겪으면서 퇴출된 고려증권이 사옥 건물을 매물로 내놨고 한국HP는 이 건물을 700억원에 매입해 이름을 바꾼 뒤 본사로 사용했다.

이후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리먼브라더스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한국 부동산을 사들였다. 정 본부장에게도 쉴 틈 없이 러브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곧 회의감을 느꼈다. 외국 자본 대상의 국내 부동산 매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외자유치가 아닌 국부유출로 반전되면서다. 자신에 대한 여론이 한 순간 '애국자'에서 '매국노'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정 본부장은 업계를 떠날 준비를 했다.

◇부동산 관리·운영자로 성공적 변신

하지만 시장은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로담코가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경기도 부천에서 초대형 쇼핑시설 '로담코 프라자'(현 디몰) 개발·임대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 본부장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해당 부동산은 현대백화점이 한 동에 입점하고 쇼핑·여가 멀티플렉스가 한 동에 구성된 한국 최초의 보이드 타입 빌딩이다.

당시로선 국내에서 백화점이 아닌 일반 리테일 상업시설을 개발해 운영해본 투자인력이 전무했다. 정 본부장도 상업시설 운영 경험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그는 '무엇이든 맡으면 잘 하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다. 때문에 당시 골드만삭스에 다니고 있던 한 선배에게 이끌려 등 떠밀리다시피 운영 책임자 자리에 앉았다. 그는 "차제에 서울을 떠나 은둔 생활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부천행을 택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은둔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키를 잡았으니 맡은 소임을 다하려면 닥치는대로 배워야 했다.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쇼핑몰 운영·관리 모델조차 없었다. 정 본부장은 영국과 호주 등 선진국을 찾아 다니면서 리테일 운영과 관리에 대해 공부했다. 해외 사례를 한국에 적용시키기 위한 고민도 이어갔다. 그렇게 3년6개월 가량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로담코 프라자는 2003년 초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정 본부장은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 쇼핑몰을 전문적으로 운영해본 유일한 부동산 매니저가 됐다. 여의도 IFC와 신세계 스타필드 등 개발에 참여한 미국 유명 쇼핑몰 개발 기업인 터브먼도 처음 한국에 진출한 직후 정 본부장에게 컨설팅을 받았을 정도다.

로담코 프라자 일이 끝난 이후 크고 작은 컨설팅 업무를 하던 그에게 또 한 번 대어급 프로젝트가 찾아왔다. 모건스탠리가 추진한 서울스퀘어 프로젝트다. 모건스탠리는 2007년 7월 옛 대우센터빌딩(현 서울스퀘어)을 금호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 이후 이 건물의 밸류에드 총괄을 정 본부장에게 맡겼다.

옛 대우센터빌딩은 1977년 서울역 앞에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들어선 랜드마크였지만 모건스탠리 입장에선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위치가 열악하고 건물도 노후해 우량 임차인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실률을 줄이고 수익을 내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정 본부장은 어떻게 하면 건물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호텔식 서비스를 입힌 오피스를 고안했다. 출입구에 스피드 게이트는 물론 엑스레이 장치까지 적용해 보안을 강화했다. 입주민 전용 회의실, 강당, 피트니스센터, 휴게실, 수유실 등 편의 시설도 설치했다. 모두 당시로선 전례 없는 획기적인 모델이었다. 호텔식 서비스와 더불어 예술과 오피스를 접목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건물 곳곳에 설치했다.

대우센터빌딩은 모건스탠리 손에 넘어간 이후 1년10개월간 개·보수를 거쳐 2009년 11월 지금의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관한 서울스퀘어는 국내 최초로 컨시어지 데스크가 적용된 오피스 빌딩으로 유명세를 탔다. 재개관 이듬해 LG전자의 주요 사업본부를 비롯해 주요 기업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개관 1년 만에 임대율 92%를 달성했다.

서울스퀘어 프로젝트를 완수한 2010년 말, 이제 좀 쉴까 하던 찰나 이번에는 해외에서 러브콜이 왔다. 반도건설이 두바이에서 추진하던 유보라타워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도와 달라며 정 본부장에게 SOS를 보내왔다. '놀러 오라'는 지인의 초대를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두바이에서 덜컥 관리 책임자직을 떠안았다. 따지고 보면 로담코 프라자 건을 맡을 때도 비슷했다. 정 본부장은 "부동산 일을 안 하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계속 큰 프로젝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고 표현했다.

당시 유보라타워 프로젝트는 국내 건설사가 두바이에서 오피스·주상복합 아파트 시행·시공을 맡은 첫 사례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개발 붐이 일면서 유보라타워가 위치한 비즈니스베이 구역 전체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현지 국영 개발사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유보라타워를 비롯해 인근 개발프로젝트들이 모두 전면 중단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중 유보라타워까지 3건을 제외하고 모든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정 본부장은 도로와 교통, 식당 등 제반 시설이 열악한 점을 커버하기 위해 유보라타워를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건물 내에서 임차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근처에 호텔이나 컨벤션 시설이 없는 점을 고려해 대강당과 회의실을 건물 내 설치했다. 운동 시설과 사우나, 식당, 세탁소, 수선소, 자동차 정비소, 등 웬만한 시설은 다 갖췄다. 더 나아가 교통편이 열악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건물 자체의 비즈니스 밴을 마련해 입주민의 중요 손님을 공항까지 가서 직접 픽업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시내 주요 장소를 30분마다 도는 셔틀버스도 마련해 현지 교통당국 인가를 받아 운영했다.

그럼에도 막 문을 연 이 건물에 앞장서 입주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이에 추가로 고안한 게 막 중동에 진출한 외국계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을 타깃으로 한 원스톱 인가·등록 서비스다. 현지 법무부 등 관계 당국과 연계해서 임차인에게 비즈니스 라이선스 취득부터 출입국 관리까지 필요한 행정 절차를 대신해준 것이다.

해당 시스템을 5개 층에만 적용해 시범 운영한 결과 대성공이었다. 2개월이 채 안 돼 5개 층 모두 임차인을 찾았다. 이 사례는 현지 신문에도 소개됐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부터 굵직한 임차인들이 하나 둘 입주하기 시작했다. 50%까지 임대율이 올라갔을 무렵 정 본부장은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자리를 옮겼다. 이 때가 2012년이다.

◇벨류애드 '특화' 매니저, 투자까지 저변 '확대'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맡으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밸류애드에 특화됐다.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준공한 이후 단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주 특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투자자는 비로소 자산 재매각이나 임대차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2년여 동안 그룹 소유 부동산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개발 콘셉트 구축과 전략 수립, 자산관리 대장 관리 등이 그의 손에 맡겨졌다.

이처럼 부동산 관리에 특화된 그가 투자까지 저변을 넓힌 건 2015년 중순이다. 물류센터 중심으로 직접 딜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업무까지 손을 뻗었다. 특히 하나금융 강남 사옥 투자 건은 정 본부장이 자산 발굴부터 운영 전략 수립, 리모델링까지 전 단계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딜이다.

당시 하나금융그룹이 강남권에서 계열사 사옥으로 사용할만한 건물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국민연금이 시장에 내놓은 옛 그레이스타워가 정 본부장의 눈에 들었다. 이 건물은 1994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연면적 2만4530㎡ 규모로 준공됐다. 국민연금이 2008년부터 리츠를 통해 소유하고 있었다. 주요 임차인인 삼성SDS가 잠실 신사옥으로 이전을 예정한 상황이었던 까닭에 빌딩에 직접 입주할 매수자에게 유리한 딜이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하나금융 비은행 계열사들 출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해 그레이스타워를 인수했다. 이후 내부 구조를 보강하고 층고를 높이는 등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 2월 입주를 완료했다. 20개층 중 9개 층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임대를 내줬다. 이처럼 투자 딜 소싱·클로징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 그는 2016년 부동산투자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그가 본부장이 된 시점을 기점으로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의 해외 투자가 본격화했다. 미국 뉴저지주 소재 노보노디스크 미주 본사를 비롯해 워싱턴 D.C 미국항공우주국(NASA) 본사와 캘리포니아 드림웍스 본사, 미국 워싱턴 센티넬스퀴어2, 미국 샌프란시스코 옐프 본사, 벨기에 브뤼셀 소재 유럽의회, 영국 런던 중심지의 원폴트리 빌딩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2015년 9000억원대였던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작년 말 4조원에 육박했다. 지금은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의 고유자본투자(PI)까지 맡고 있다.

◇보편성과 창의성의 '조화' 강조

정 본부장은 올해로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에서 9년차를 맞았다. 실장에서 시작해 상무, 전무로 차근차근 승진 계단을 밟아 왔다. 부동산투자본부장이 된 이후 설정한 펀드 규모만 2조원 이상이다. 관리에서 시작해 투자까지 자연스럽게 저변을 넓혔다. 30년 가까이 부동산 운용을 경험하는 동안 수천 건 딜을 검토했다.

스스로에 대해 여전히 투자보다는 관리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행운이 따르는 편이기도 하다. 한번 업계에 발 들인 이후부턴 굳이 쫓아다니지 않았음에도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자석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정 본부장에 대해 업계에선 입지전적인 인물, 신화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일부 후배들 입장에선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국내 시장에서 그처럼 FM, PM, AM, 투자 등 부동산 운용의 전 영역을 직접 경험한 인물은 찾기 힘들다. 지금은 비교적 구분이 명확하지만 그가 처음 부동산에 발 들인 시기엔 부동산 운용업에서도 업무별 경계가 모호했다.

정 본부장이 강조하는 투자 원칙은 보편성과 창의성의 조화다. 투자 전 단계에서 예측 가능한 리스크를 헤지할 방안이 있다면 그 투자는 보편적인 것이다. 보편성을 투자의 기본으로 보고 이 기본이 흔들리는 투자에는 손 대지 않는 게 원칙이다. 보편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게 창의성이다. 창의성을 가미하려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예컨대 비교적 안정적인 임대율과 임대료가 확보된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면서 건물 가치를 보강해 임대료를 끌어 올린다면 보편성과 창의성이 적절히 결합된 투자다. 정 본부장은 보편성과 창의성을 얼만큼 잘 접목시키느냐가 매니저의 실력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솔루션을 찾아가면 투자자에게 최소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기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리스크를 떠안는 일도 그의 사전엔 없다.

관리를 주로 한 까닭에 협상 능력도 탁월하다. 투자 자산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할 때마다 예외 없이 임차인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투자관리의 첫 걸음은 그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일이었다. 대인관계에 있어 '경청'과 '정성'을 강조하는 그의 가치관도 그간 다수의 협상 경험과 무관치 않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잘 듣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면 결국 통한다는 게 정 본부장의 지론이다. 우스갯소리로 "육두문자를 하게 되더라도 '정성껏' 하라"고 말할 정도다.

출자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업무적으로 만난 고객들과도 '인생의 동반자'로서 관계를 쌓아가는 편이다. 몇몇과는 주말에도 거리낌 없이 만나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한다. 내부 직원들에게도 벽을 두지 않고 농담도 잘 한다. 가끔은 사비를 들여가며 호젓한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대접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풀어야 웃는 낯으로 밖에 나가 일하지 않겠느냐는 주의다.

◆정해성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부동산투자본부장 주요 약력

-1999년 8월~2001년 7월 CBRE 컨설팅 차장
-2001년 8월~2006년 11월 JLL PM사업부장 겸 로담코프라자 개발본부장
-2006년 12월~2011년 3월 신영에셋 AM사업부장 겸 서울스퀘어 본부장
-2010년~2012년 H&S Real Estate Asset Management(Dubai, UAE) 대표
-2012년~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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