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파장]채안펀드 가동, 시장 반색…"규모 키우고 범위 넓혀야"정부 의지, 투심 개선 효과, CP도 지원대상 포함해야
이지혜 기자공개 2020-03-23 13:29:56
이 기사는 2020년 03월 20일 18: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채권시장안정펀드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2008년 이후 12년 만이다. 업계는 일단 반색하고 있다. 단기자금 조달시장은 물론 크레딧시장까지 출렁이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그러나 과거보다 강력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펀드 조성규모를 확대하고 지원 대상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의지만으로 채권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2008년보다 펀드 규모가 확대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단기자금조달 시장이 경색되어 있기에 기업어음 등도 지원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재가동 시사…업계 반색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일 오전 은행회관에서 은행연합회장과 8개 은행장(KB·신한·우리·하나·농협·산은·기은·전북)을 만나 코로나19 관련 은행권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은 위원장은 채권시장 안정펀드를 10조원 규모로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추이를 지켜본 뒤 펀드규모를 더 확대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채권시장 안정펀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금융시장이 경색되자 그해 11월 10조원 규모로 조성된 펀드다. 한국은행 등 은행권과 보험사, 증권사가 출자해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2017년에도 채권시장 안정펀드 가동이 논의됐지만 채권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실물 경기 타격이 더 깊고 길게 갈 것”이라며 “기업들의 신용 리스크가 펀더멘탈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자금조달 시장의 경색이 풀리려면 채권시장 안정펀드의 효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코로나19 관련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각 국이 금융위기를 넘어서는 강력한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시장불안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회사채 시장에서 유동성 경색 조짐이 나타난다고 보고 위기평가 등급을 ‘경계’로 격상했다.
크레딧업계는 물론 투자은행업계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진작 나왔어야 할 조치”라며 “시장이 상당히 위축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 조치를 취하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서둘러 진행하지 않으면 채안펀드의 효과마저 묻힐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2008년 등장 당시 채권 시장에 큰 힘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펀드 운용이 본격화한 2008년 12월 17일 이후 크레딧 스프레드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이듬해 10월 말에는 사실상 펀드 운용이 종료됐다. 덕분에 집행된 자금 규모도 4조4000억원 정도로 당초 계획의 절반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규모 커지고 단기조달 시장도 살려야
그러나 일부에서는 채권시장안정펀드 규모를 놓고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실질적 신용경색을 풀어내는 데도 효과가 있지만 투자심리 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규모 측면에서 아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2016년 말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가동재개 의지를 보이자 국내 채권시장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정부가 20조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투자심리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단기자금조달 시장 경색을 해결할 방안을 요구하는 시선도 있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단기자금조달 시장은 지금 마비됐다”며 “이런 사태가 심화하면 기업들의 줄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어음 금리는 3개월물 기준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증권사를 중심으로 기업어음을 매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CP발행사들이 차환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의 발행수요가 급증하며 CP잔량이 지금은 늘고 있지만 머잖아 차환리스크가 현실화하며 CP잔량이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기존 채권시장안정펀드에는 신용등급 A2이상 PF-ABCP만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약 CP 등 다른 기업어음 등도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MMLF(머니마켓 뮤추얼펀드 유동성 지원 창구)를 별도로 만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CP와 회사채는 성격이 다른 만큼 하나의 펀드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단기물 전용 펀드를 조성해 단기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2008년과 마찬가지로 CPFF(기업어음매입기구)를 설치했다. CPFF는 과거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CP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가동한 기구다. CPFF는 신용등급 A-1, P-1, F-1 이상의 3개월 만기 달러표시 CP를 매입한다. 또 머니마켓 뮤추얼펀드 유동성 지원 창구(MMLF)를 통해 금융기관이 자산을 사들일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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