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 정평 시즌 골머리…'적시성-적정성' 딜레마 [코로나19 파장]크레딧 위기, 재점화 원성 우려…이벤트 발생시 늑장 조정 지적도 부담
양정우 기자공개 2020-04-21 14:30:04
이 기사는 2020년 04월 20일 06: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용평가업계가 코로나19 사태 속 정기 평정 시즌을 맞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펀더멘털 위축이 불가피한 발행사를 평가하고 있지만 곧이곧대로 신용등급을 낮추기가 부담스럽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화에 사력을 다하는 가운데 자칫 시장에 불안감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그렇다고 넋놓고 있기도 어렵다. 향후 코로나19 여파로 크레딧 위기가 현실화된 발행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는 오히려 선제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는 오명을 살 여지가 있다. 그간 굵직한 크레딧 이벤트가 터질 때마다 신평업계는 적시 경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평 시즌 돌입, 신평사 복잡한 속내…평정 적정성 강조, 불안감 조성 우려
신용평가업계는 이달 정평 시즌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시장의 예상대로 부정적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호텔과 면세, 영화관, 정유사 등 코로나19 여파가 심한 섹터를 중심으로 손을 대고 있다.
신용평가사마다 표면적으론 정석대로 평정에 나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돌발 사태가 발행사의 사업·재무 역량에 미칠 영향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타격이 일시적 이벤트에 그칠지 여부도 중요한 판단 요소다. 신용등급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진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 아래 정기 평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막상 정평에 나서는 속내는 복잡하다. 코로나19 여파를 그대로 신용도에 반영하자니 시장에 미칠 충격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조정은 발행사의 크레딧 스프레드에 즉각적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최대 20조원)를 필두로 '코로나19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놨으나 자칫 효과가 희석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채안펀드는 이달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시장 안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신용평가사 3사가 연일 부정적 진단을 쏟아내는 건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평정의 적정성만 쫓다가 수그러든 시장의 불안감을 다시 자극했다는 원성을 살 가능성이 높다.
평정의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모든 금융위기가 종국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예측 가능성이 한층 더 낮다. 전례없는 전염 사태의 종식 여부와 실물경제, 금융시장의 타격 정도를 종잡기 어렵다. 중장기 이슈인지 구조적 여파인지도 불분명한 터라 평정을 앞두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신용평가사가 시장에 줄 타격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등급을 평정할 수 없다"며 "하지만 펀더멘털의 훼손이 심한 발행사가 많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평정 적시성 간과, 늑장 대응 비난…크레딧 이벤트, 최악의 시나리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기도 곤란한 처지다. 그간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업계가 대형 크레딧 이벤트마다 사전 경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대규모 손실 발표 등 발행사의 신용 쇼크가 확정된 후 급격히 등급을 내리는 게 대표적 사례다. 오랜 기간 늑장 조정 문제가 개선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신용평가사 입장에선 발행사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고객인 만큼 등급 하향 결정은 이해관계와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정부도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놓고 강도높은 개선안을 주문해 왔다. 등급 인플레와 뒷북 조정 등 신용평가의 신뢰성 문제가 부각된 뒤로 신용평가사를 주기적으로 검사해 왔다. 금융 당국은 제4 신평사 허용이라는 카드까지 쥐고 있다.
향후 코로나19에 따른 레이팅 액션을 주저하다가 크레딧 사건이 터지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비난의 초점이 적시 경보에 실패한 신용평가사로 맞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평 시즌을 맞은 신용평가업계가 평정의 적시성과 적정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는 셈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는 최근 호텔롯데(AA0)와 호텔신라(AA0), CJ CGV(A+) 등을 등급하향 와치리스트에 등재했다. 이어 SK에너지(AA+)와 S-OIL(AA+), 롯데컬처웍스(A+) 등의 아웃룩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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