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3월 25일 07시0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매도가 돌아온다. 모처럼 운용업계 인사의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 같은 대표 하우스는 물론 롱온리가 주력인 중소형사도 롱숏 펀드를 하나둘 결성해 나가고 있다. 숏이 제한된 탓에 그간 반쪽짜리 전략을 구사했지만 이제는 설계상 강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또 다른 장면도 눈길을 끈다. 자기 색깔은 분명했으나 퍼포먼스는 평범했던 롱숏 운용사가 최근 싱가포르 기관에서 3000억원 가량의 포지션을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이 성과를 이루기까지 실무진은 밤낮없는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종 결정을 끌어낸 배경엔 공매도 재개라는 전제 조건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국내 증시 수급의 반전을 점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현장 분위기를 덧붙이면 올해 초부터 국내 운용사에 먼저 노크하는 해외 기관의 수가 부쩍 늘었다. 코리아에 시큰둥했던 글로벌 하우스 가운데 아시아 헤드쿼터가 서울을 방문한 곳도 여럿이다. 유독 외면받던 한국에서 공매도 금지라는 결격 사유가 해제되자 국내 펀더멘털의 변화를 업데이트하느라 분주하다.
개인 투자자에게 악마화된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증시에서 고공행진하던 기업이 단번에 꺾이는 폭락 사태는 사라졌을까. 한때 시가총액이 10조원에 달한 2차전지 테마주 금양은 주가가 90% 넘게 빠졌고 얼마 전 코스닥 시총 2위였던 HLB는 하한가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게 약탈적 세력의 공매도 탓이라는 주장은 힘이 빠지는 형국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는 수급 측면에서 분명히 손해였다. 글로벌 운용사와 투자 기관은 해외 익스포저를 설계할 때 정확한 헤지 포지션이 가능해야 비로소 투자 판단을 내린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데 굳이 한국에 미련을 둘 이유도 없다. 아시아 지역 비중은 일본과 중국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이 공매도 금지를 반기던 개미 투자자는 미국 증시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 공매도 재개로 오를 일만 남았냐고 반문한다면 선뜻 대답하긴 어렵다. 다만 한국 증시에 대한 관심이 실제 매수로 이어지는 기반이 다시 마련된 건 확실하다. 최근 해외 기관의 전향적 스탠스를 고려할 때 전환점이 다가왔다는 예측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매도 개시로 추가될 변동성도 자본시장 메커니즘에서 공포만 남기는 팩터는 아니다. 최악의 여건은 변동성이 있는 시장이 아니다. 기대 변동성과 수익 가능성은 어떤 측면에서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오히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부침도 없이 서서히 가라앉는 시장이다.
국내 증시의 오랜 침체기는 한국 기업의 성장 잠재력마저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매수세도, 매도세도 힘을 잃은 시장에서 외인의 복귀는 분위기를 뒤바꿀 강력한 신호다. 공매도 금지는 개인 투자자의 분노가 한몫을 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 해제는 역설적으로 개미의 귀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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