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 워치] "은행업은 '항공모함'…국민은행, 지속가능성이 원칙"최철수 CRO(전무), 리스크관리·수익 최적화 고민
이은솔 기자공개 2020-06-04 13:56:32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7일 09: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B국민은행은 파생결합상품 불완전판매 논란부터 금융사고까지 최근 금융권을 강타한 대형 악재를 모두 피했다. 수익성과 리스크가 충돌할 경우 리스크를 우선하는 국민은행만의 리스크관리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리스크관리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다. 바꿔말하면 '생존'이다. 안정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은행 업무에서 리스크를 어떻게 감지하고 전행 차원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지가 지속가능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변곡점 된 IMF, 은행업 본질 여수신→리스크관리로
국민은행의 리스크관리 체계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시기는 다른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 후반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국내 은행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전에는 은행업의 본질이 여신과 수신에 있었다면 이후에는 '리스크매니지업'이 은행의 본질이다.
해외은행에서는 1980년대부터 리스크관리를 은행의 주요 업무로 삼았지만 국내은행에서는 1990년대까지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다. 그중에서도 국민은행은 리스크관리위원회나 내부등급법, 신용평가모델 등 리스크와 연관된 신규 제도를 비교적 선제적으로 도입해왔다.
1990년대부터 이사회 내에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별도로 갖추고 사외이사를 위원으로 기용해 은행 리스크를 관리했다. 당시에도 은행 안에 리스크관리부서가 존재했는데, 개별 리스크 수치를 측정해 여신 전략의 보조로 활용하는데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통합된 2002년 이후부터는 부서가 리스크관리그룹으로 격상됐고 리스크관리부, 신용감리부 등이 주요 부서로 운영됐다.
은행 내 의사결정에서 리스크관리 부서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커지면서 리스크전략그룹의 외형도 성장했다. 2010년에는 신용리스크부가 신설됐고 2015년에는 모델검증 유닛이 새로 생겼다. 여신심사그룹에 있던 신용평가모델 유닛도 리스크전략그룹 내로 편입됐다. 현재는 리스크전략그룹 내 3개 부서와 2개 유닛에서 113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 액션플랜 재점검 "리스크관리 통해 은행 회복력 강화"
최철수 리스크전략그룹 전무(사진)는 국민은행에서 리스크 한 분야만 파고든 베테랑이다. 리스크는 은행 업무 중에서도 진입 장벽이 높고 전문성이 요구돼 리스크 실무자 출신 임원이 많다. 최 전무는 국민은행 리스크관리부에서 부장까지 근무하며 은행 업무 전반의 리스크를 총괄했다.
이후에는 지주와 계열사로 자리를 옮겨 주력 계열사인 은행에서의 선진 리스크 노하우를 적용했다. KB금융지주 리스크부장을 맡으며 은행 뿐 아니라 계열사 전반의 리스크 업무를 들여다봤다.
리스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최 전무에게도 올초 발생한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국민은행은 이듬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 부서별로 위험상황 발생에 따른 '액션플랜'을 마련한다. 다만 지난해 말 만들어둔 액션플랜에는 코로나라는 전례없는 상황을 반영할 수 없었다.
최 전무는 지난해 말 세워뒀던 액션플랜을 꺼내와 부문별 경영계획을 점검했다. WM, CIB, 여신 등 그룹별로 취약 부문을 살펴보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경우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계획 변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최 전무는 자산 성장을 안전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면 오히려 은행의 회복력(Resilience)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올해의 위험성향(RA: Risk Apetite)도 지난해 세워둔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위험성향은 은행에서 자본 대비 리스크를 어느정도 가져갈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신용, 시장, 운영이라는 3대 리스크뿐 아니라 금리 리스크, 평판 리스크 등을 포함한 9대 리스크를 고려해 산출한다.
국민은행은 올해 사업계획에서 내부자본적정성을 74% 수준으로 정해뒀다. 기본자본 100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중 총리스크량을 74까지만 늘리고 나머지는 예비자본으로 보유하겠다는 의미다.
위험성향(RA)을 높이는 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다소 공격적인 영업을 하겠다는 의미다. 올초 예상했던 것보다 여신 성장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내부적으로 전략 변화도 검토했지만, 아직까지는 대출과 투자 부문에서 큰 위험징후가 보이지는 않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자산 포트폴리오 관리에 집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최 전무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 경영환경이 달라졌다”며 “다만 변화에 따라 사업을 무조건 축소하기보다는 우리가 성장해야 할 영역과 축소해야할 영역을 구분해서 리스크관리를 차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행업은 '항공모함', 산업지형 변화 발맞춰 금융자원 배분
최 전무는 은행업을 '항공모함'에 비유했다. 거대한 항공모함이 잔물결마다 항로를 틀지는 않듯이 모든 사건마다 목표를 수정하는 게 아니라 리스크관리의 대원칙을 세워두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은행업은 단순히 금융업이라는 별개의 산업분야가 아니라 중공업부터 중소기업, 자영업자, 개인들까지 국내외 거의 모든 산업의 영향을 받는 총집합체다.
이 때문에 국민은행은 리스크 사전지표로 여신 포트폴리오를 가장 주요하게 살펴본다. 외부에서 리스크 관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인 연체율이나 NPL커버리지비율은 사실 리스크가 이미 발생한 후에 사후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다. 국민은행에서는 사전적 지표로 은행 대출이 나가있는 산업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신용등급 변화는 어떤지, 차주들이 속해있는 산업군의 흐름은 어떤지 체크한다.
최 전무는 "금융의 지형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보려면 산업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산업의 사양과 성장 구도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지형에 맞춰 여신정책을 세우기 위해 거시적 지표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리스크전략그룹은 은행에서 오랜 시간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산업IR(Investor Rating)등급을 매긴다. 각 산업별로 1단계에서 15단계까지 산업등급을 부여하고 여신정책과 연계해 금융자본을 재배분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취약익스포저 관리를 강화했다. 유가하락, 환율상승 등 예상되는 영향에 따라 고영향/중영향/저영향군으로 사업군을 분류하고 집중관리가 필요한 섹터에 대한 신용위험 점검 강도를 높였다.
신용등급 심사와 산업 편중도 점검 등을 통해 리스크전략그룹 내 신용리스크부가 여신정책의 방향을 세팅하면 여신그룹에서는 정책 실행을 맡는다. 실행이 완료되면 리스크그룹 내 신용감리부서는 신용등급의 적정성과 여신제도 프로세스의 적합성을 점검한다.
◇리스크관리의 대원칙은 '지속가능성', 비즈니스 섹터에 대한 이해 필수
이렇듯 리스크관리 부서는 단일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즈니스 부서의 업무 과정을 함께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에서 미처 보지 못한 위험요인을 찾고 대응하다보니 자칫 영업을 '방해'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은행 내 주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리스크관리협의회와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 이사회 의결까지 겹겹의 안전장치를 거친다. 비즈니스 부서와 리스크 부서는 의사결정과정에 함께 들어가 의견을 낸다. 가령 글로벌부서가 '이 국가에 지분투자를 하려고 한다'고 발표하면, 리스크부서는 '해당 국가에는 이런 위험요인이 있고 위험관리방안은 이렇게 세워뒀다'고 검토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리스크전략그룹이 검토하는 사업은 국내외, 금융과 비금융을 가리지 않는다. 캄보디아 프라삭은행 지분투자, 미얀마 은행업 진출과 같은 글로벌 사업부터 MVNO 사업 진출처럼 국내의 사업 규제와 얽혀있는 사안까지 모두 리스크부서 실무자들이 잠재리스크 요인을 분석하고 업무추진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하며 관리 방안을 수립한다.
최 전무는 평소 리스크전략그룹 내 직원들에게 '비즈니스 부문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스크만 맡던 직원들을 일부러 비즈니스 부서나 영업현장에 보내기도 한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효과적인 리스크관리 전략을 세울 수 있고, 비즈니스 부서를 더 잘 설득할 수 있다는 게 최 전무의 지론이다.
국민은행이 최근 금융권의 심각한 운영리스크로 떠오른 투자상품 부실이나 불완전판매에 연루되지 않은 것도 리스크관리 부서와 비즈니스부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최 전무는 봤다.
리스크와 수익의 최적화를 통해 은행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원칙을 전 부서가 이해하고 있고, 비즈니스 부서와 리스크 관점이 충돌할 경우에는 리스크가 우선돼야 한다는 리스크문화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최 전무는 "고객 자산은 은행의 재무제표에 잡히는 숫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자산처럼 관리한다는 게 국민은행의 원칙"이라며 "리스크부서의 피드백을 비즈니스 부서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국민은행 내부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던 덕분에 고객자산관리와 관련된 문제들을 피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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