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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형 헤지펀드 '기준'을 만들다, 박기웅 VI운용 전무 [매니저 프로파일]도전정신 갖춘 '완벽주의자' 1세대 한국형 헤지펀드 개척, 변동성 잡는 '위험 전문가'

최필우 기자공개 2020-06-02 13:18:57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9일 08:1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화려함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채권형펀드 매니저 중에도 예외는 있다. 박기웅 브이아이(VI)자산운용 전무(사진) 얘기다. 한국형 헤지펀드 1세대 매니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채권 기반 멀티전략(Multi-Strategy)을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도 채권형 헤지펀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입지가 공고하다.

34살에 대형 자산운용사 본부장 타이틀을 단 뒤 순탄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선입견과 달리 그의 커리어는 녹록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새 조직을 세팅하고 신상품을 내놓는 과정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까칠한 매니저'라는 평판도 생겼다.

치열한 논박을 거쳐 탄생한 채권형 헤지펀드는 투자자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었다. 지금은 흔한 채권 롱숏펀드, 레포(Repo)펀드도 그가 처음 선보인 상품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그는 최근 브이아이자산운용에 합류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성장 스토리 : 아버지 발자취 따른 경제학도, 채권시장 입문

박 전무는 학창시절 일찌감치 대학 경제학과 진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아버지 영향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경제학 이론을 가르치는 걸 좋아하셨다. 박 전무는 95학번으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63학번 아버지와 동문이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채권 전문가가 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외환위기 직후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금융투자협회 자산운용가 전문가 과정을 들으면서 채권 시장에 흥미를 가졌다. 당시 국내 채권시장은 발행잔액 기준으로 450조원 규모였다. 350조원이었던 주식시장보다 100조원 더 컸다.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주식시장과 달리 소수의 플레이어가 참여하고 규모도 더 큰 채권시장에 성공 기회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채권시장 입문을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양증권 채권운용팀에 입사했다. 고객 돈이나 회사 고유재산을 채권으로 운용하는 게 그가 처음 배운 업무다. 이때 동양증권은 채권 강호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박 전무가 입사했을때 채권운용팀장이 당시 동양증권에 몸담고 있었던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다. 채권 운용의 기본과 고객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박 전무는 1년 반 만에 한국자금중개 채권 및 스왑중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로커 업무가 본인에게 더 적합하다고 봤다. 장외 시장에서 채권 매니저들의 매매를 중개했다. 채권 시장에서 매니저는 '갑', 브로커는 '을'로 통한다. 을 생활을 하면서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익혔다. 반대로 본인이 갑이 됐을 때 을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압도적인 실적으로 두각을 나타내 회사에서 보내주는 미국 유학 기회를 잡았다.

미국 유학 후에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 영향으로 이직을 고민한다. 회사를 떠나 삼성선물 리서치팀에 잠시 몸담았고 옛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합류 제안을 받았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은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대안 펀드를 추구하는 곳이었다. 박 전무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입사 1년 후엔 채권운용본부장이 됐다. 갑작스럽게 마케팅 조직으로 자리를 옮긴 직속 상사였던 장부연 이사(현 현대자산운용 대표)가 기회를 줬다. 다만 본부 구성원이 한명도 없어 조직 세팅부터 시작해야 했다.

젊은 나이에 본부장 타이틀을 달면서 부담도 컸지만 남들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로 여겼다. 퀀트 전문가와 회계사를 영입하며 보편적인 채권운용 조직과 차별화를 도모했다. 박 전무의 전매특허 멀티전략 채권형 헤지펀드가 시작된 순간이다.


◇투자 스타일 및 철학 : 리턴은 통제하지 못해도 리스크는 통제한다

박 전무는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채권 수익자들의 니즈(needs)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채권에 투자하면서 공격적인 자본 수익을 추구하는 고객도 있지만 이는 주류가 아니었다. 큰손 고객은 대부분 명확한 리스크리턴 프로파일을 원했다. 고수익을 내지 않더라도 리스크를 확실히 통제하는 게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시장 초과 수익률을 달성하는 건 그 다음 문제로 봤다.

멀티전략이 그가 찾은 답이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다양한 채권 투자 전략 수요가 발생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에 합류한 뒤 전략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끄는 채권운용본부는 운용보다 R&D에 강점이 있는 조직으로 정평이 났다. 수많은 전략 시도와 시행착오는 멀티전략의 밑거름이다.

채권 차익거래 전략과 상대가치 투자 전략이 양대 축이다. 채권 차익거래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레버리지를 활용해 우량 채권에 투자한다. 시장 상황에 맞춰 레버리지 비율을 조절해 알파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상대가치 투자는 국내외 채권 금리와 파생상품 움직임을 관찰하고 롱(Long) 또는 숏(Short) 포지션을 취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박 전무는 멀티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계적 조합이 아닌 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략을 단순하게 분산하기만 해선 리스크와 변동성이 줄지 않는다. 전략별 리스크리턴 프로파일을 정확히 이해해야 적절한 자산과 지역 배분이 이뤄질 수 있다. 무분별한 전략 분산은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게 박 전무의 철학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도 그가 세운 원칙이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선제적으로 채권투자 전략 외연을 넓히자 타사도 신상품 출시 대열에 합류했다. 레포(Re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해외 채권형펀드에 재간접 투자하는 상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마케팅 조직에선 이 상품을 출시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박 전무는 딱 잘라 거절했다. 스스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투자하면 위험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했고 글로벌 재간접펀드에서 큰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

◇트랙레코드1 : 채권 롱숏, 레포펀드 '시초'…거듭되는 '멀티전략' 진화

박 전무는 수익률보다 15년 넘게 개발과 진화를 거듭한 전략을 중요 이력으로 삼는다. 고수익을 추구하는 주식 매니저와 달리 채권 매니저는 리스크를 통제하면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게 존재 이유다. 그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에서 본인이 총괄하는 본부를 꾸린 후 새로운 전략을 잇따라 개발한다.


2006년 흔치 않았던 채권 롱숏펀드를 내놓은 게 시작이다. 이 펀드는 현물 채권을 사 롱 포지션을 취하고 장외파생상품인 선도 스왑으로 숏 포지션을 잡는 전략을 구사한다. 출시 초창기 3개월 만기 상품을 운용하다가 트랙레코드가 쌓이면서 1년 만기 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펀드는 2000억원 넘는 자금을 모으며 본부의 성장 발판이 됐다.

2007년에는 레포를 활용한 레버리지 펀드를 선보였다. 현재 헤지펀드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레포펀드의 시초가 된 상품이다. 당시 레포는 펀드런이나 긴급 환매 요구가 들어왔을 때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되라고 만들어 놓은 툴(tool)이다.

박 전무는 레포가 채권형펀드 상품성을 개선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감독 당국에 활용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감독 당국은 레포 도입 취지와 다르긴 하지만 활용 목적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며 출시를 허가했고 이 상품은 반향을 이끌어 냈다.

2009년엔 미래에셋스마트스윙펀드를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 상품이 출시되면서 당해 운용자산 규모가 1조원 넘게 증가했다. 앞서 개발한 롱숏, 레버리지 전략에 이자율 옵션 전략을 더해 헤지 기능을 강화했다. 다양한 전략을 한 바스켓에 담으면서 박 전무의 멀티전략펀드 기틀을 마련해 준 상품이다.

2011년 미래에셋스마트Q토탈리턴펀드가 출시되면서 박 전무는 히트상품 제조기로 입지를 다졌다. 채권 차익거래 전략이 추가됐다. 당시 주식에 투자하는 에쿼티헤지(Equity Hedge) 전략이 주류였으나 유일하게 채권 차익거래를 주전략으로 내세워 차별화를 도모했다. 이 전략이 추가되면서 이듬해 열린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박 전무는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이 열리고 반년 뒤 2012년 6월 미래에셋스마트Q아비트리지펀드를 출시하면서 멀티전략의 큰 틀을 완성시켰다. 그동안 확장해 온 채권 투자 전략에 주식 기반 이벤트 드리븐(Event Driven) 전략이 추가됐다. 확실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포착되면 레버리지를 일으켜 주식에 투자하는 식으로 초과 수익을 노려 상품성을 개선시켰다. 이 상품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시그니처 헤지펀드다.

◇트랙레코드2 : 2013년 '버냉키 텐트럼' 충격, 원칙 재정비 계기

성공가도를 달리던 박 전무는 2013년 최대 위기에 봉착한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하면서 채권 시장에 일대 혼란이 일었다. 이른바 '버냉키 텐트럼' 파장으로 낮은 변동성을 자랑하던 그의 펀드도 흔들렸다.

2013년 6월 한달 간 그의 펀드는 수익률 마이너스(-) 1.17%를 기록했다. 이는 박 전무의 트랙레코드 사상 가장 부진한 수익률이다. 이후 부진을 만회해 연 수익률 3.71%로 2013년을 마무리했지만 고수익보다 위험 통제를 우선시하는 그에겐 큰 충격이었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운용 과정에서 변동성이 커지면 고객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펀드 운용을 실패로 규정하고 리스크 관리 전략을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모든 전략에 로스컷(Loss Cut) 제도를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수익률이 악화될 때 빠르게 손절할 수 있어야 큰 충격에 견딜 수 있다고 판단했다.

넷 익스포저가 아닌 그로스 익스포저를 중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로스 익스포저는 롱과 숏을 합친 비중이다. 예를 들어 롱이 25%, 숏이 25%면 넷 익스포저는 0%고 그로스 익스포저는 50%다. 그로스 익스포저를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특정 전략 의존도가 낮아졌다. 이후 7년간 버냉키 텐트럼에 준하는 위기가 다수 있었으나 변동성을 통제하는 게 가능해졌다.

◇업계 평가 :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개척자'

박 전무는 채권 투자와 위험 통제 전문가로 명성을 얻은 동시에 까칠한 매니저라는 평판도 얻었다. 이는 채권 투자에만 본인의 영역을 국한시키지 않아서 생긴 평판이다. 운용 뿐만 아니라 마케팅에도 열정을 쏟는 매니저로 유명하다. 고객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강한 추진력으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 매진한다. 진정성을 기반으로 고객 마음을 얻었으나 주변에 그의 일욕심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의 커리어는 조직 구성원들과의 치열한 격론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조직을 세팅하고 전례 없던 전략을 개발하는 과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을 포함한 조직 구성원들이 진통을 겪었으나 타사와 차별화된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 생겼다. 트랙레코드가 쌓이면서 고객 사이에서 신뢰도도 높아졌다. 성격이 까칠하다는 평판은 도전과 완벽을 추구하는 매니저라는 훈장이다.

투자자문업 시도에서도 그의 강한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형 헤지펀드 출시를 숙원 사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형 헤지펀드 출범 논의는 답보 상태였다. 그사이 금융투자업계는 고수익을 추구하는 주식 전문 투자자문사 중심으로 재편됐다.

박 전무는 자문업을 개시해 채권 투자로 절대수익을 내는 상품을 선보이고 싶었으나 미래에셋금융그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투자자문업으로 성공을 입증한 뒤 복귀해 비즈니스를 이어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박 전무가 추진하는 멀티전략 헤지펀드에 힘을 실어주겠다며 복귀를 권했다. 박 전무는 1년 만에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으로 복귀해 펀드매니저 커리어를 재개한다.

이후 10년간 운용 전략을 개선해 멀티전략을 완성시켰다. 낮은 변동성을 유지하면서 목표수익률을 달성해 꾸준한 트랙레코드를 쌓았다. 위험을 통제하는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험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향후 계획 : 도전은 계속된다, 브이아이자산운용 합류

박 전무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떠나 브이아이자산운용에 합류했을 때 업계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브이아이자산운용은 전신인 제일투자신탁 시절을 포함하면 업력이 꽤 긴 회사지만 헤지펀드 시장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도전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과업으로 꼽는다. 그의 두번째 직장인 한국자금중개는 브로커리지 기업 중 성과가 탁월한 곳은 아니었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에 합류했을 때 구성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조직 세팅부터 시작했다. 그가 고안한 채권 운용 전략은 대부분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브이아이자산운용에 합류한 것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위해서다. 브이아이지산운용은 뱅커스트릿PE와 홍콩 금융사 VIMAC 컨소시엄으로 주인이 바뀐 뒤 전문사모집합투자업 강화를 선언했다. 위험 관리와 멀티전략에 특화된 운용사로 거듭나는 걸 목표로 삼고 박 전무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박 전무는 체계가 잡힌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거듭하는 길을 택했다.

박 전무는 브이아이자산운용 채권 운용을 총괄하면서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멀티전략과 해외채권 투자에 초점을 맞춘 조직 세팅이 그의 역할이다. 6월께 인력이 새로 합류하면서 조직이 출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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