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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네이버, '총수 없는 대기업'을 주장하다①창업자 지분 3.7%, 친인척·순환출자 없어…'실질 지배력' 시각차

원충희 기자공개 2020-06-15 08:11:06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9일 14:09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벌의 사전적 의미는 재계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기업가의 무리다. 총수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시가총액 4위 신흥 대기업 네이버는 재벌로 취급해야 할까.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재벌 총수인가.

네이버는 2017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와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였다. 네이버를 재벌로 볼 것인가, 이해진 GIO를 총수라 볼 것인가를 둔 논쟁이었다. 공정위가 이 GIO를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려 하자 네이버 측은 이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공개석상에 거의 나오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이 GIO가 직접 공정위를 찾아가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호소했다.

이때 네이버가 들고 나온 카드는 '총수 없는 대기업'이다. 이 GIO의 보유지분이 당시 4%대에 불과하고 친·인척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재벌과 잣대가 달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이듬해인 2018년 이 GIO가 네이버 이사회에서 아예 빠지고 지분도 일부 매각해 3.73%로 줄였으나 공정위는 여전히 네이버를 '재벌'로 분류하고 있다. 이해진 GIO는 여전히 총수다.


◇기존 재벌과 지배구조 달라, 포스코·KT와 유사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에서 인사나 신규투자를 결정하는 등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연인 혹은 법인을 뜻한다. 이때 동일인이 자연인일 경우 총수라고 부르고 법인이면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된다. 국내에서 포스코, 농협, KT, S-오일, 대우조선해양, KT&G, 대우건설 등 7곳이 총수 없는 대기업이다.

포스코와 KT는 국민연금이, S-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Aramco)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은 산업은행 계열이 최대주주다. 농협은 전국 농·축협 조합이 출자해 만든 농협중앙회가 모든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다. 대부분 국영기업에서 민영화됐거나 공적성향이 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네이버의 총수 없는 대기업 주장은 파격이었다. 민간에서 창업한 회사가 그런 식으로 지정받은 사례가 없다.

네이버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쳤던 것일까. 네이버는 여타 재벌 대기업과 다른 지배구조를 보이고 있다.

첫 번째는 주주구성이다. △국민연금 외 10%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없다는 점 △재무적 투자자(FI) 위주로 구성됐다는 점 △외국인 지분율이 과반을 넘는다는 점 등이 KT, 포스코 등 총수 없는 대기업들과 유사하다.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 참조

네이버는 현재 국민연금이 12.54%로 최대주주이며 블랙록(5.03%)을 포함한 외국인투자자비율이 약 59%에 이른다. 소액주주(지분 1% 미만)의 지분비율도 58.8%에 달하고 있다. 이 GIO의 지분으로는 최대주주는커녕 5대 주주도 어렵다.

적은 지분을 보완할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삼성·LG처럼 가족·친족으로 이뤄진 특수관계자나 그룹 비영리재단을 통해 오너십을 확보하는 구조도 짜놓지 않았다.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도 없다.

이 GIO는 국내 계열사의 사내이사직을 모두 사퇴함으로써 이사회에 '입김'이 작용할 만한 통로를 차단, 확실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췄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가 "혼자서 의사 결정할 만큼의 지분도 없고 이 회사가 내 회사라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같은 지배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공정위·노조, 실질 지배자로 '이해진' 지목

지배구조 상 총수 없는 대기업에 가까운 네이버를 공정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공정위 측은 △이 GIO가 창업자로서 네이버컴 시절(1999년)부터 2018년까지 19년간 이사회에 몸담았다는 점 △현재 경영진과 이사진 상당수가 그가 이사회 재직하던 시절 선임됐다는 점 △네이버가 소유한 자사주 11.51%가 우호지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한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는 엠파스에서 근무하다 2007년 5월 NHN 검색품질센터 이사로 왔다. 같이 일했던 이준호 NHN 회장이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게 강력 추천했다고 알려졌다.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네이버파이낸셜 대표와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 GIO와 삼성SDS 시절부터 같이 사업을 해온 파트너다.

2017년 6월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상호 매입 하면서 네이버 지분 1.71%(56만3063주)의 의결권이 되살아난 상황도 고려됐다. 당시 양사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우호지분이다. 네이버 안에는 이렇게 활용될 수 있는 주식이 1889만8600주(1.51%)나 있다.

공정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의 해외진출 확대 등 네이버 핵심전략에 이 GIO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네이버 노조의 쟁의과정에서 이 GIO의 사내 영향력을 가늠케 할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노조가 내건 현수막과 팻말에는 '은둔경영 이제 그만', '이해진이 응답하라' 등의 슬로건이 적혀있었다. 노조원들도 이 GIO를 노사문제의 최종결정자로 지목한 셈이다.

공정위나 노조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네이버는 기존 '재벌'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이 GIO를 총수라 보더라도 기존 재벌과 달리 '부의 세습'을 추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현 지배구조로 네이버가 영속적인 거버넌스를 만들어 간다면 포스트 재벌의 한 해법을 보여줄 수 있다.

2019년 2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1층에서 열린 노조 단체행동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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