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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신세계그룹, 한 지붕 남매경영 유지할까'분리경영' 안착했지만 유기적 사업구조…아직은 동거 체제 '유리'

전효점 기자공개 2020-06-29 07:31:44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23일 10: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세계그룹은 CJ그룹, 한솔그룹과 함께 '삼성'이라는 뿌리에서 출발했다. 이명희 회장은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5녀다. 신세계그룹은 1997년 계열분리 당시 함께 분가한 그룹 가운데 규모가 제일 작았다. 8개 계열사를 포함한 당시 신세계그룹 전체 매출액은 2조원에 머물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19년 말 신세계그룹 계열사는 총 42개사, 그룹 전체 매출은 29조2400억원까지 불어났다. 계열분리 이후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업종 전문화에 매진한 결실이다. 성장세만을 놓고 보면 신세계그룹은 계열분리의 수혜를 가장 톡톡히 받은 대기업집단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오늘날 신세계그룹은 이명희 회장의 자녀인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이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를 나눠서 이끄는 '남매 경영' 체제를 확립했다. 2세 체제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신세계그룹이 '포스트(POST) 이명희 시대'를 겨냥해 또다시 '2차 핵분열'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이병철 창업주의 2세 승계 과정에서 계열분리로 출발한 신세계가 세대 교체를 앞두고 또 다른 계열분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다.

계열분리는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단순히 지분 정리 여부를 넘어, 현재 '신세계그룹'이라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이마트와 신세계가 서로의 도움없이 완전한 독립에 나서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가 최대 관건이다. '포스트 이명희' 체제 하의 신세계그룹은 남매 경영의 모습을 이어갈 수 있을까.


◇'따로 또 함께'…손발 척척 신세계·이마트

실제로 신세계그룹이 가까운 미래에 계열분리를 단행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그룹측은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한다. 두 남매가 양사를 맡아 독자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세 지분 정리만을 근거로 계열분리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의 지배구조를 띄고 있는 신세계그룹의 미래를 추측하기 위해서는 각 계열사의 사업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신세계그룹 이마트와 신세계 산하 42개 계열사는 유통과 제조, IT, 건설 등에 걸친 광범위한 사업 영역에서 서로 촘촘한 이해관계와 밀접한 협업 구조로 얽혀있다.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마트와 신세계를 각각 맡아 독자적인 경영을 추구해왔다. 2015년 연말 정기인사에서 정유경 당시 부사장이 총괄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남매 경영의 서막을 열었다. 이듬해 4월에는 정 총괄사장과 정 부회장이 각각 보유하던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맞교환하면서 경영뿐만 아니라 지분 구조까지 정리됐다.

*이마트 산하 계열사

남매는 백화점과 할인점 각자의 본업에서 독자적인 성장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명희 회장의 시대뿐만 아니라 2세 경영에 들어선 이후에도 신세계와 이마트 사업은 더욱 촘촘히 엮이기 시작했다.

양사 사업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신세계·이마트와 산하 계열사간 유기적 사업구조는 크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 유통망과 브랜드 사업간 상당히 촘촘한 구조로 짜여있다.

온·오프라인 계열사간 시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단연 에스에스지닷컴이다. 이마트의 온라인사업부를 물적 분할하면서 태어난 에스에스지닷컴은 이후 신세계에서 분리된 신세계몰을 흡수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이마트의 자회사로 분류돼 있지만 양사 지분(이마트 50.1%, 신세계 26.9%)이 고루 섞여있다.

에스에스지닷컴은 그야말로 그룹 계열사의 온라인 유통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부분 계열사의 콘텐츠를 싣고 있다. 백화점과 할인점은 물론 신세계의 까사미아, 시코르, 신세계TV쇼핑, 신세계인터내셔날, 아울렛, 스타필드 등 계열사가 '쓱닷컴' 내 자체 페이지를 두고 매출 가운데 상당 부분을 거두고 있다. 각 오프라인 계열사들이 독립적인 온라인몰을 운영했다면 거둘 수 없는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에스지닷컴이 그룹의 온라인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면, 스타필드 법인들은 계열사의 집결에서 오는 시너지효과를 오프라인에서 구현하고 있다. 스타필드뿐만 아니라 신세계백화점과 면세점, 이마트 할인점 등도 그룹의 각종 브랜드를 입점시키면서 유통망을 제공해주고 있다. 피코크마켓, 트레이더스, 각종 전문점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카페), 시코르(화장품), 까사미아(가구), 신세계인터내셔날(화장품, 패션)의 각종 브랜드를 추가하면서 경쟁력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나 신세계푸드 등 브랜드·제조 역량을 가진 자회사들도 그룹 유통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백화점이나 면세사업을 영위하는 신세계 계열사 뿐만 아니라 이마트에도 사업의 상당부분을 기대고 있다. 신세계푸드도 모회사 이마트 계열뿐만 아니라 신세계 백화점 점포 등에 '딘앤델루카', '메나쥬리', '베끼아앤누보' 등 자체 외식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키면서 수익을 얻고 있다. 이마트 산하 신세계아이앤씨와 신세계건설은 이마트뿐만 아니라 신세계쪽 점포 신축이나 증설이 있을 때마다 유무형 인프라를 제공한다.

계열사들은 사업 초 그룹 내 일감을 수주하면서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남매가 독립경영에 나선 이후에도 여전히 내부거래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

*신세계 산하 계열사

◇성장 단계 계열사간 시너지·어린 3세들…'가족경영' 수혜 커

이같은 사업구조를 보면 신세계그룹이 계열분리를 하는 대신 '가족 경영'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 머무름으로써 얻는 것이 계열분리를 통한 이득보다 현재로서는 큰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룹 전략실은 예전처럼 최상위 컨트롤타워 역할이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신세계·이마트가 주요 사업에서 효율성과 통일성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방향타를 잡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실적인 장애물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신세계그룹이 계열분리를 고려한다면 이마트와 신세계는 상호 연결고리 상당부분을 정리해 나가야 한다. 정용진 부회장이 절반 이상(5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광주신세계처럼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지 않는 계열사를 사업양수도나 매각 등을 통해 정리해야 한다.

지분 관계뿐만 피분리회사와 그룹간 사업 관계도 심의 대상이 된다. 계열분리 청구가 들어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자금지원 관계, 그외 부당 지원, 매출매입 의존도 등을 면밀히 심사한다. 계열분리하는 회사가 모그룹과 완전히 다른 회사라고 인정돼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신세계그룹은 비슷하게 '가족경영'을 채택하고 있는 다른 재벌 집단과도 구분된다.

SK그룹에서 계열분리가 임박했다고 거론되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상당히 이종의 사업분야를 영위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그간 인수합병(M&A)을 통해 가전제품·자동차 렌털 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키워왔고, SK디스커버리는 화학이 주업이다. 뿐만 아니라 SK그룹의 경우 2세를 넘어 이미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도 명확한 구획 나누기를 서두르는 이유가 된다.

반면 신세계와 이마트는 같은 유통업종 내에서 상당한 규모의 시장을 공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3세들의 나이도 10~20대로 아직 어리다. 적어도 당분간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 회장·정교선 부회장 형제처럼 한 지붕 밑 동거 체제를 이어가면서 가족경영의 장점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조명현 고려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계열분리는 주로 승계 과정에서 유산을 배분하기 위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사업간 관계가 적다면 계열분리를 해 버리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그룹 내 유관성이 높은 사업이라면 계열분리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포기해야 하는 단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계열분리를 단행한 후에는 내부거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최종적으로는 결국 이명희 회장의 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은 책임경영을 하고 있는 것일 뿐 그룹 내부적으로는 분리경영이라는 표현도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이명희 회장 지분 승계는 이 회장의 결단이고, 일련의 과정이 계열분리 수순이라고 보는 일부 시각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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