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M&A]루프트한자 사례로 본 '한시적 국유화' 시나리오독일정부, 2023년까지 일시적 지분 보유…아시아나 딜 무산시 채권단 관리 유력
유수진 기자공개 2020-07-30 08:16:40
이 기사는 2020년 07월 29일 15:2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이 아시아나항공 M&A 무산에 대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시적 국유화'가 하나의 시나리오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직접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로 올라 경영에 참여하다 상황이 나아진 뒤 재매각에 나서는 형태다. 채권은행의 대주주가 정부라는 점에서 '국유화'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채권단 관리'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최근 독일 정부가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루프트한자의 경우가 이와 비슷해 참고할 만한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은 애초에 지분 매각 시한을 정해두는 등 정부의 관리체제가 '일시적'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추후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을 관리하게 되더라도 이 같은 장치를 설치해 민간에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정부, 루프트한자에 12.6조 투입해 지분 20% 확보
글로벌 항공업계에서는 올해 들어 항공사 국유화 움직임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의 지원금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며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정부는 법정관리 중이던 알리탈리아 매각에 실패하자 고민 끝에 완전 국유화를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 국유화 가능성이 급부상한 건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관련 발언을 하면서다. 손 부위원장은 이날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협상이 무산될 경우 국유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놓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직접 '국유화'를 언급한 건 아니지만 부인도 하지 않으며 사실상 여지를 남겨뒀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M&A가 무산될 경우 채권단이 고려해 볼 수 있는 '플랜B'로 독일 루프트한자 사례를 꼽는다. 정부가 최대주주로서 한시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다 상황이 나아진 뒤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시나리오다. 독일 정부는 지난 5월 말 루프트한자에 90억 유로(약 12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지분 20%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는 국책은행인 독일개발은행이 30억 유로(4조2000억원), 독일 정부의 기업구제 펀드 연방경제안정화기금(WSF)이 57억 유로(8조원)를 대출해주는 형태다. WSF는 나머지 3억 유로(4000억원)로 루프트한자 지분 20%를 사들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승인을 받아 해당 내용이 확정되면 독일정부는 루프트한자의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현재 단일 최대주주는 독일 브레이크 시스템 제조업체 크노르 브렘즈의 하인즈 헤르만 틸레 회장이다. 틸레 회장은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하자 지분율을 15.5%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막판까지 정부가 직접 지분을 인수하는 안에 반대했으나 주주총회 직전 마음을 돌렸다.
독일 정부와 루프트한자는 구제금융과 관련해 몇몇 조건에 합의를 이뤘다. 우선 정부는 루프트한자의 경영정상화를 전제로 오는 2023년까지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로 했다. 항공사를 실제로 국유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업황이 개선될 때까지 잠시 관리하겠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루프트한자 감독위원회에 정부 측 인사 2명을 두지만 적대적 M&A건을 제외하곤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경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신 루프트한자의 자구노력을 독려하기 위한 조건도 달았다. 제때 이자를 내지 못하면 정부가 지분 5%를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로 했다. 또한 배당 및 임원 보너스 지급 중단, 임직원 월급 삭감 등 고통분담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채권단, 출자전환시 지분율 37% 최대주주…'섣부른 국유화' 우려도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이 끝내 인수를 포기하면 채권단 관리 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항공업황 침체로 곧바로 재매각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에 작년 1조6000억원, 올해 1조7000억원 등 총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고 그 중 8000억원을 영구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입한 상태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는 지분 30.77%(6868만8063주)를 쥐고 있는 금호산업이다. 하지만 채권단이 영구채 전환으로 1억3104만3001주를 보유하면 지분율 36.99%로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다. 동시에 금호산업 지분율은 19.39%로 줄어들게 된다. 출자전환시 채권단 몫 만큼 신주가 발행돼 지분율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이미 딜 불발시 아시아나항공에 추가 지원을 하기 위한 필요자금 산정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지원을 확정한 1조7000억원은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는 전제 하에 오는 10월까지의 운영자금만 계산한 금액이기 때문이다. 특히 M&A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검토되지 않았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통한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안기금을 통한 지원이 현실화되면 채권단의 지배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산업은행은 기안기금을 설계할 때부터 항공사에는 주식 전환이 가능한 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는 형태로 지원해 부채비율을 낮춰주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기안기금 투입시 배당 및 자사주 취득 제한, 기업 정상화 시 이익 공유 등의 조건도 따라 붙는다.
항공업계에서는 섣부른 채권단 관리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현대산업개발과의 거래성사에 최선을 다하고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플랜B'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독일의 유일한 대형항공사로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됐다. 아시아나항공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나오는 국유화 얘기는 정확히 말하면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간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독일과 환경이 다르니 성급한 출자전환으로 채권단 관리 하에 두려 해서는 안 된다. 독일도 '한시적'이란 전제를 깔았고 회복시 민간에 다시 넘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을 재매각 하려면 채권단 하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노조 등의 이슈가 있어 성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자칫 국민 세금을 투입하고도 더 부실화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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