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모니터/삼성전자]'미전실→이사회' 컨트롤타워 교체에 쓴 10년①잇따른 사법리스크, 이사회 중심 경영 계기…이재용 시대 핵심기구 자리매김
최필우 기자공개 2020-10-05 07:52:22
[편집자주]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 대기업은 개인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효율성만큼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더벨은 기업의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9월 22일 08: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 이사회 변천사를 논할 때 미래전략실은 빼놓을 수 없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미전실은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시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미전실이 빛난 만큼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했어야 할 이사회의 존재감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를 겪으며 미전실이 문을 닫자 삼성전자 이사회는 비로소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형인 사법 리스크 속에서 최초의 비(非)대표이사 의장, 최초의 사외이사 의장을 잇따라 배출했다. 효율을 따져 경영진이 겸직하던 조직에서 투명하게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기구로 거듭나고 있다.
◇이사회 위에 미래전략실, 압도적인 존재감
2010년 3월 24일 이건희 회장은 차명계좌 논란으로 퇴진한 지 23개월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같은 해 11월 19일 미래전략실을 출범시킨다. 1959년 만들어진 고(故) 이병철 명예회장 시절 비서실이나 1998년 이건희 회장 취임 시 생긴 구조조정본부, 그리고 앞선 퇴진 때 사라진 전략기획실의 명맥이 이어진 셈이다. 초대 미래전략실장은 김순택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공식적인 지휘계통은 아니었지만 미전실은 이사회에 앞서는 의사결정 기구였다. 미전실이 출범할 때 이사회 의장은 2010년 1월 29일 대표이사에 취임한 최지성 전 DMC부문장었다. 그는 2012년 6월18일 2대 미래전략실장에 취임했고 권오현 전 반도체사업부장이 대표이사직을 이어 받으며 이사회 의장직을 겸했다. 전임 대표가 미전실, 후임 대표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구도였다.
미전실은 규모 측면에서도 이사회를 압도했다. 고위급 임원 다수를 포함한 약 200명 안팎의 인원으로 구성됐고 전략·기획·인사지원·법무·커뮤니케이션·경영진단·금융일류화지원팀 등 7개 팀이 삼성그룹의 미래 전략을 수립했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 방향을 제시하는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삼성전자 이사회에 각 부문 수장이 속해 있다고 해도 경영 의사결정을 내릴 때 미전실의 의중을 배제할 순 없었다.
이 시기 삼성전자 이사회의 영향력은 미전실에 미치지 못했으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이어갔다. 2013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산하 CRS위원회를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갑작스럽게 접어든 이재용 시대, 이사회 역할 재조명
미전실 중심 경영 체제는 2014년 5월 10일 갑작스러운 전기를 맞이한다. 미전실을 설립하고 힘을 실어준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여전히 와병 중에 있다. 그룹 총수 자리가 이 부회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각 변동이 불가피했다.
2016년 3월1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역할의 변화 조짐이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가 아니더라도 이사회 구성원이면 의장을 맡을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그간 경영 효율성을 중시해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도록 했다면 3세 이 부회장 시대에는 투명성에 무게를 싣기로 한 것이다. 이 정관 변경은 향후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가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같은 해 이 부회장은 미전실을 통하는 지휘계통을 계승하기보다 이사회를 통한 경영 참여로 가닥을 잡았다. 10월 27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 입사 25년 만에 등기이사 자리에 올랐다. 삼성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가 된 건 2008년 4월 이 회장 퇴임 이후 8년 6개월 만이다. 당시 이사회 의장이었던 권오현 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공식적인' 경영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회가 이재용 시대의 핵심 경영 기구로 재조명된 순간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엘리엇 사태를 겪으며 변화에 속도를 낸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2015년 5월 27일 삼성물산에 제일모직과의 합병 반대의사를 통보한 데 이어 2016년 10월 5일에는 삼성전자 이사회에 주주가치 증대를 위한 제안서를 발송했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분할 후 지주회사와 삼성물산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단순화,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모두 최소 3인의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이 제안의 골자였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29일 지배구조 개편 계획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사회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를 1명 이상 추천하고, 이사회의 기업 지배구조 관련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개편 계획이 엘리엇에 대한 응답이라고 밝히진 않았으나 엘리엇의 요구가 이사회 변화를 촉진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체제는 얼마 가지 않아 위기를 맞이한다. 2016년 1월 12일 삼성 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79억원을 출연한 것과 관련해 뇌물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1월 8일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수사 강도를 높였다. 향후 수년간 삼성전자의 족쇄가 될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됐다.
◇미래전략실 '6년 4개월' 만에 종지부, 이사회 선진화 속도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6일 열린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 1차 청문회에서 미전실 해체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미전실이 불투명한 방식으로 경영에 개입하고 총수 일가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는 지적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듬해 2월 24일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오너 일가 최초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지만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약속대로 같은달 28일 미전실을 공식 해체한다.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은 그룹 개념이 없어졌다. 계열사 이사회와 대표이사 중심의 자율경영 체제로 미전실을 대신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2017년 2월 24일 10억원이 넘는 기부금, 후원금, 출연금 등을 낼 때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의사결정 의지를 표방하는 안건이었다.
같은해 10월에는 사의를 표한 권오현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 대신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됐다. 2016년 3월 변경된 정관에 따라 대표이사가 아닌 이 실장도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는 삼성전자 역사상 최초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분리된 사례다.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가 겸직하는 자리가 아닌 대표이사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직책이 됐다. 이 실장은 이듬해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2018년 4월 13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사내이사를 제외하기로 하면서 또 한번 진일보한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권한이 한층 커진 셈이다. 이듬해 외부인원으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면서 사회공헌 성격의 인물 비중이 늘고 여성 사외이사 수도 2명으로 확대됐다.
2018년 2월 석방된 이 부회장은 사내이사 활동을 속개했으나 이듬해 10월 26일 임기 만료후 재선임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재판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2018년 5월 1일부터 맡고 있는 그룹 총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최초 '사외이사 의장' 체제, 소유·경영 분리 기조 강화될까
삼성전자 최초의 비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 체제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했다. 이 의장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에 연루돼 2019년 12월 17일 있었던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올해 2월 14일에는 구속 상태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자진 사임했다. 정상적으로 의장직을 수행할 수 없어 이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8월 10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된 상태다.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에서도 잇따른 사법 리스크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는 한발 더 나아가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시대를 열었다. 올해 2월 21일 연 이사회에서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의장으로 선임했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이 됐다는 건 이제 삼성전자 외부 출신 인사들이 최고 의사결정기구 수장을 뽑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사외이사는 사내이사가 배제된 후추위를 통해 선임되고 있다.
오는 2022년 3월에는 또 한번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가 6년으로 제한돼 박 의장의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2016년 3월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활동한 이사진 최선임자다.
의장 또는 이사진 교체가 있어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사회 권한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난 5월 6일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경영권 승계 포기를 선언했다. 올해 2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실효적 감시제도' 주문에 따라 지난 2월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른 사과다.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준법감시위의 행보는 추후 이사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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