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언택트 투자파일]소프트뱅크벤처스, 의료·IT 혁신 '힐세리온' 우군으로스마트폰 연동 '초음파 진단영상' 베팅, '생활양식 변화'에 가점
박동우 기자공개 2020-09-22 07:58:56
[편집자주]
코로나19는 벤처캐피탈 시장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언택트) 사회의 도래다. 창업 생태계도 언택트 업종이 큰 수혜를 입으면서 성장세가 더욱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선견지명을 갖고 투자를 단행한 벤처캐피탈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예기치 못한 외생변수 속에 효자로 부상한 언택트 스타트업과 투자 현황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9월 21일 07: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의료와 IT를 접목한 스타트업 힐세리온에서 '혁신' 키워드를 발견했다. 스마트폰을 연동해 초음파 진단 영상을 띄우는 아이디어가 '생활 양식의 변화'를 내세운 투자 방향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실탄 지원에 이어 해외 시장 진출의 우군으로 나섰던 이유다.힐세리온의 진화는 끝이 없다. 고객사에 비대면 방식으로 인공지능(AI) 학습용 의료 데이터를 공급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전 세계의 바이오 업체가 연구용 자료를 편리하게 확보할 길을 터주는 셈이다. 신사업 기반을 닦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채비에 나섰다.
◇ '스마트폰 연동' 초음파 진단기, '판로 확장·사업 다각화' 낙관
2012년 문을 연 힐세리온은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휴대형 초음파 진단기 '소논'을 선보였다. GE, 필립스, 후지쯔 등 글로벌 기업들이 호령하는 의료 영상 장비 분야에 도전장을 던져 시장점유율 10위 안에 드는 성과를 일궜다.
창업자인 류정원 대표의 옛 경험이 힐세리온 성장의 원동력이 돼줬다. 류 대표는 2000년대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학과 뇌과학을 공부했다. 생체 신호를 분석하면서 CT·MRI·엑스레이·초음파 등 의료 영상에 관한 전문성을 쌓았다.
이후 청구성심병원 응급실에서 전임의로 일하면서 현장의 고충을 깨달았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중증·경증 여부를 즉시 가려낼 도구가 없었다. 대당 1억원이 넘는데다 무게도 꽤 나가는 기존 진단 장비를 활발하게 쓰기도 어려웠다.
류 대표는 스마트폰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인식했다. 그는 "간편하게 진단 영상을 재생할 수 있고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공유하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며 "소형 장비를 만들어 의료진에 공급하면 진료 현장에서 환자를 분류하고 수술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한층 쉬워질 것으로 내다봤다"고 밝혔다.
아이디어의 진가를 알아본 벤처캐피탈이 지원군으로 나섰다. 마젤란기술투자, HB인베스트먼트, 키움인베스트먼트, 지앤텍벤처투자 등 여러 하우스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라운드를 진행하면서 150억원가량 확보했다.
류 대표는 재무적투자자(FI)들 가운데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단연 돋보였다고 기억한다. 2012년 중소기업청(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 창업경진대회에서 연을 맺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문규학 전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가 힐세리온의 주력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딜(Deal)을 검토하면서 제품의 공급선이 넓어질 수 있다는 걸 매력으로 꼽았다. 종합병원 등 상급 의료기관을 넘어 동네 병·의원, 보건소 등 1차 의료기관에도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초음파 영상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 다각화의 가능성도 엿봤다.
2013년 시리즈A 단계에서 8억원을 집행하며 주주로 합류했다. 이듬해 진행한 시리즈B에서 10억원을 추가로 베팅하면서 힐세리온의 제품 상용화에 도움을 줬다.
후속 투자에 이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발판도 깔아줬다.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임·직원과 포트폴리오사 관계자들이 모이는 연례 행사에 힐세리온을 초청했다. 덕분에 외국 기업·기관 네트워크를 다질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난민기구(UNHCR), 미국 정부 등의 공공 조달 사업에 참여하는 자격을 얻으면서 첫 단추를 뀄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실적이 퀀텀점프할 기회를 맞았다. 폐렴 등 합병증의 진행 수준을 신속하게 진단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러시아·터키·이집트 등 각국 정부에서 러브콜이 잇달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 관계자는 "힐세리온은 종래 관습을 깨고 생활 양식에 변화를 주는 기업을 길러낸다는 하우스의 투자 기조에 부합했다"며 "IT와 의료 기술을 융합해 초음파 진단 기기 시장에서 혁신적 결과물을 만들어낸 회사"라고 평가했다.
◇ 신성장동력 '의료 데이터 플랫폼', 개도국 의료기관 공략 강화
힐세리온은 미래 성장 동력도 마련했다. 해답을 '빅데이터'에서 찾았다. AI 학습용 의료 데이터를 수집·가공하는 온라인 플랫폼 'DHP(Digital Healthcare Platform)'를 구상했다. 의료용 AI 엔진을 활용해 R&D를 진행하는 제약 기업이나 의료 기기 업체에 자료를 공급해 수익을 창출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고객사가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플랫폼에 프로젝트 게시물이 생성된다. DHP에 등록한 의료진은 엑스레이, CT, 초음파 사진 등 영상 데이터를 모아 클라우드에 올리고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힐세리온이 위촉한 전문가 풀(pool)과 AI를 활용해 자료를 검증하는 방식을 짰다.
올해 8월 인도의 헬스케어 회사 다이애그노스마트(Diagno Smart)와 손잡고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하이드라바드 지역의 건강검진센터 100곳을 통해 매달 1만장의 초음파 사진을 수집할 계획이다. DHP의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뒤 내년 상반기 정식 론칭하는 로드맵을 세웠다.
류 대표는 "진단 영상 데이터를 넘어 체온·혈압·혈당·체중·심전도 등 다양한 생체 신호를 수집해 바이오업계에 공급할 길이 열릴 것"이라며 "신약과 의료 기기의 연구개발(R&D) 생태계에 힘을 싣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힐세리온은 DHP 플랫폼 사업 추진에 힘입어 개발도상국 의료 기관 공략을 강화한다. 신형 초음파 진단 기기 출시로 뒷받침할 예정이다. 기존 제품보다 무게를 줄이는 한편 모바일 앱에 나타나는 영상의 화질을 개선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해외 진출과 제품 R&D 비용을 감안해 프리IPO 라운드를 진행 중이다. 약 50억원을 조달키로 결정했다. 기존 주주와 새 투자사들이 참여를 타진한 상황이다.
류 대표는 "디지털 기술과 헬스케어를 접목해 의료 현장의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사명을 명심하고 있다"며 "신사업의 기틀을 다지는 데 집중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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