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모니터/현대차]사내이사 무게중심 '영업·생산→재무' 대세 변화정의선 체제 CFO 중용…이원희 사장, 지배구조 개편 '주목'
박상희 기자공개 2020-11-16 11:30:02
[편집자주]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 대기업은 개인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효율성만큼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더벨은 기업의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11월 10일 16: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을 대표하는 표어는 '뚝심 경영'과 '품질 경영'이다. 그래서일까. 오너일가를 제외한 현대차 이사회 사내이사는 전통적으로 생산과 영업을 총괄하는 인물이 맡아왔다.정의선 체제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원희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사진)과 김상현 전무 등 CFO 출신이 사내이사 자리를 꿰차는 등 재무통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16년부터 5년째 사내이사를 맡으면서 장수하고 있는 이 사장은 사실상 정의선 시대를 연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 명예회장이 2016년 말 이후 건강악화를 이유로 두문불출 하면서 현대차 경영은 2017년부터 사실상 정의선 체제로 이뤄졌다. 이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은 국내 주요 그룹이 경영권 승계 등 주요 과도기마다 재무통을 중용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사내이사 영업통→재무통 '대체', 5명 중 2명 CFO 출신
정 회장은 2010년 현대차 이사회 사내이사로 처음 등재됐다. 정 명예회장은1999년부터 올 3월까지 21년 간 사내이사로 계속 이름을 올렸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현대차 이사회 멤버 가운데 오너일가인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 부자를 제외한 사내이사는 생산을 책임지는 울산공장장과 영업담당 총괄 출신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0년 사내이사였던 양승석 전 사장은 영업담당, 강호돈 전 부사장은 울산공장장 출신이었다. 강 전 부사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억조 전 사장도 울산공장장 출신이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나란히 사내이사를 지낸 김충호 전 사장과 윤갑한 전 사장 역시 각각 영업과 생산 총 책임자였다.
2016년도 들어 변화가 감지됐다. 김 전 사장의 뒤를 이어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원희 사장은 영업통이 아닌 재무통 출신이었다. 이 사장은 1984년 현대차에 입사한 뒤 재정팀장과 국제금융팀장, 미국법인 재경담당 이사, 재경본부 본부장 등을 거쳤다.
정 회장이 현대차 사내이사로 첫 선임된 해인 2010년부터 2016년 초까지 재경본부장을 지낸 CFO 출신이다. 이 사장은 2015년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재경부문 뿐만 아니라 기업전략, 사업관리, 국내영업 등을 총괄하고있다.
올 3월 정기 주총에서 신규로 사내이사로 선임된 김상현 전무도 현대차 재경사업부장, 재경본부장 등을 지낸 CFO다. 이원희 사장의 직속 후배다. 김 전무의 사내이사 선임으로 현대차는 이사회 사내이사 5명 가운데 2명을 재무통 출신으로 채웠다.
영업라인 사내이사가 자취를 감춘것과는 달리 생산라인 사내이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8년 3월 주총에서 하언태 사장이 윤갑한 사장의 뒤를 이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하 부사장은 2018년부터 울산공장장을 맡고 있다. 다만 전체 사내이사진에서 생산담당이 차지하는 존재감은 재무통이 부상하면서 과거 대비 많이 낮아졌다.
◇이원희 사장, 엘리엇 공격 방어 성공…정의선 회장, 두터운 신뢰
재계는 이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현대차 이사회 무게중심이 영업 및 생산에서 재무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로 보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재무 관리와 자금 조달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CFO 출신이 CEO로 중용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재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현대차의 경우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CFO 출신이 이사회 멤버로 승격한 것을 예사롭게 볼수만은 없다는 게 재계 분석이다. 지배구조 개편이나 승계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재무담당자들이 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2017년부터 정의선 체제로 접어들었고 이듬해인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포함한 출자구조 재편에 나섰다. 해당 개편안에는 현대차가 포함되지 않지만 지분구조 상 현대차가 얽혀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장도 깊숙이 연관됐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안은 글로벌 사모펀드 엘리엇의 등장으로 암초에 부딪혔다. 당시 주요 주주였던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개편안에 반대하면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당기순이익의 최대 50%를 배당금으로 내놓을 것 등을 요구했다. 다행히 주총에서 엘리엇의 요구 안건은 모두 무산됐다.
엘리엇은 지난해 1월 현대차에 또 다시 주주제안을 통해 배당금으로 보통주 주당 2만1967원, 우선주 주당 2만2017원, 2우선주 주당 2만2067원, 3우선주 주당 2만2017원을 배당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현대차 이사회가 기말배당 금액으로 정한 금액보다 7배 많은 배당을 요구했다.
이 사장은 당시 주총을 앞두고 ‘주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서신을 통해 "과도한 배당으로 대규모 현금 유출이 발생한다면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여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위기 대응을 위한 자금 역시 소멸돼 회사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 "현대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주주 여러분의 합리적 의결권 행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장은 엘리엇의 고배당 요구와 사외이사 선임 요구를 무리없이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엘리엇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후 현대차는 주주친화정책을 펼치는 행보를 보여줬다. 2016년 사내이사로 첫 선임된 이 사장은 지난해 3월 주총에서 재선임됐다. 엘리엇의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본인의 사내이사 재선임에도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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