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1월 28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며칠간 PE업계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때마다 빠지지 않는 화두는 단연 교보생명이다. 주주간 계약을 둘러싼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와 신창재 회장 간 오랜 갈등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 18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딜로이트안진 회계사들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의 운용인력을 불구속 기소했다. PE 투자 과정에서 적정가치 산정을 둘러싼 갈등은 왕왕 일어난다. 하지만 주주간 계약을 둘러싼 갈등이 민사를 넘어 형사 사건으로 번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투자시 최대 주주인 신 회장과 2015년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으면 풋옵션을 행사한다는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IPO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FI는 펀드설정기간에 제약이 있어 마냥 IPO를 기다릴 수는 없다. 따라서 풋옵션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다. FI들은 결국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풋옵션 행사 후 양측은 행사가격과 관련해 대립각을 세웠다. 2019년 3월 FI는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했고 법정으로 간 갈등은 점점 골이 깊어졌다. 교보생명은 FI의 풋옵션 가격산정에 문제가 있다며 2020년 4월엔 딜로이트안진 회계사들을, 11월에는 FI의 운용역들을 형사고발했다. 최근 이들이 불구속 기소 되며 중재 판정에의 영향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여론전도 격화되고 있다. FI의 중재신청 직후 신 회장 측은 중재철회를 요구하며 "민족기업 교보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부, 사회, 투자자,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와의 공동발전을 위해 창출해 온 사회적 가치가 진의를 모르고 체결한 계약서 한 장으로 폄하되거나 훼손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FI들은 개인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개입시키지 말라고 강조한다. 최근 FI는 자료를 통해 교보생명의 경영진과 담당직원들이 개인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과 무관한 주주간 계약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 FI의 투자금은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의 연기금과 국부펀드 자금이라는 점도 부각했다. 개인 오너의 계약 위반으로 시민들의 노후자금이 위태로워 질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법정대응에 나설 것이란 입장이다.
최근 PE의 영향력이 커지며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뿐 아니라 대규모 소수지분 투자 등이 그 어느때보다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소수지분 투자는 성장자금이 필요한 기업의 갈증을 적기에 해소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발전적인 성장 파트너로서 PE가 일정부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활용사례도 늘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 SK루브리컨츠, 티맵모빌리티 등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소수지분 투자건이다.
하지만 형사사건으로까지 번지는 법정공방 사례 출현은 이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FI는 출자자(LP)의 자금을 모아 회사에 투자하는 입장이다. 대규모 소수지분 투자건을 들고 펀딩을 할 경우 안전장치를 명시한 계약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는 LP들의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고 PE의 투자활동도 위축될 여지가 커진다.
PE를 공격하는 데 흔히 쓰이는 '먹튀자본'의 프레임도 부담스럽다. 법정공방을 넘어선 여론전이 격화될 수록 통상적으로 쓰이는 게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치 않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이라는 케케묵은 이미지다.
국내에 PEF 제도가 도입되고 15년 넘게 지나는 과정에서 PE 투자활동의 기본은 기업의 가치를 키워내는 것이었다. 기업가치가 커야 펀드성과도 커지는 당연한 논리에 의한 것이지만 상호간 순기능이 발현되며 PE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되어 갔다. 기업의 성장 동반자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10여년이 걸린 셈이지만 이런 사건이 터질때마다 여전히 이전 먹튀 이미지가 차용되며 노력을 반감시키고 있다.
ICC의 중재결과는 올해 하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양측 모두 법정다툼 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으나 최종판결과 별개로 업계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팩트 다툼을 넘어서 감정이 더해진 여론전 격화는 결국 전체 업계에도 상흔을 남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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