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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 '넘치는' 정책자금 vs '한정된' LP [thebell desk]

안영훈 벤처중기1부장공개 2021-03-12 08:12:19

이 기사는 2021년 03월 11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벤처투자는 그 과정이 벼 농사와 비슷하다. 농부가 논에 물을 대고 좋은 볍씨로 싹을 틔운 모를 심듯 벤처캐피탈은 펀드를 결성하고 고르고 고른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한 톨의 볍씨로 가을 추수철 1000톨의 쌀을 얻듯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수백, 수천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게 해준다.

20년 전 1세대 벤처캐피탈리스트들에게는 농부가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하듯 민간 LP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정책자금이 절실했다.

세월이 흘러 요즘은 펀드 결성을 위한 마중물이나 마찬가지인 정책자금이 차고 넘친다. 실제 얼마 전 정시 위탁운용사 선정이 끝난 한국산업은행 및 한국성장금융의 정책형 뉴딜펀드 사업은 정책 출자 규모가 1조원에 달할 정도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정책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20년 전과 비교해 이제는 펀드 결성이 수월해졌을까. 많은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노(NO)'다. 정책자금은 넘치지만 이와 매칭해야 할 민간 LP 자금은 한정돼 있어 펀드결성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벤처캐피탈은 254개사(창투사 165개사, LLC 31개사, 신기사 58개사)에 달한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펀드 결성에 참가하다 보니 정책자금을 받기위한 경쟁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끝난 정책형 뉴딜펀드의 인기 분야인 투자제안형 분야만 봐도 42개사가 출사표를 던져 최종 11개사가 선정됐을 정도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책자금을 받아도 숨 돌릴 틈이 없다. 실제 펀드 결성을 마치기 위해선 민간 LP 자금 매칭이란 높은 관문을 넘어야만 한다.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몇 안되는 공제회와 은행, 그리고 일부 기업 자금을 받기 위한 최종 경쟁이 남은 탓이다.

소위 잘나가는 대형사들은 LP 자금을 가려 받는다고 하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대다수 벤처캐피탈은 대형사들이 훱쓸고 간 시장에서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최근 은행들이 너도나도 벤처캐피탈 자회사를 세우며 간접적인 지원에 나서니 실제 은행권에서 받을 수 있는 투자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벤처캐피탈 자회사가 없는 IBK기업은행에 조금이라도 줄을 대고자 하는 기조가 강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마중물은 넘쳐도 정작 물을 끌어 올 저수지 수원(민간 LP 자금)이 급격히 말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수원을 찾기도 어렵다. 몇몇 벤처캐피탈이 성공한 투자 기업들과의 인연을 내세워 십시일반 자금을 조달하고 있지만 민간 LP 자금 기근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벤처캐피탈이 새로운 수원으로 탐내는 보험사도 사실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수백조원을 굴리며 자본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한 보험사는 은행, 공제회에 이어 새로운 민간 LP로 종종 언급돼 왔다. 하지만 보험사의 벤처펀드 투자는 사실상 막혀있다.

감독당국의 투자 가이드상 보험사는 신용등급이 없는 회사에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한데 스타트업의 경우 신용등급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신용등급이 있더라도 보험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RBC비율 산출방식상 벤처펀드 투자시 보험사는 기존 RBC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을 직접 짊어져야 한다. 보험사가 역마진 부담에도 불구하고 금리 2% 남짓하는 장기채 투자에만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정책자금 위탁운용사로 선정돼 축하인사를 건냈더니 "요즘은 기본 7~8% 수익률로는 명함도 못내민다. 두자릿대 수익률을 내고도 갈수록 민간 LP 자금 모으기가 버겁다. 돈만 뿌리지 말고 돈이 유입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 한 벤처캐피탈 대표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말대로 정책적 자금지원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민간 LP 자금 유입을 위한 정책적 유인책을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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