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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 잡은 엘앤에프, LG 둥지 떠나 '홀로서기' 분쟁 합의 직후 1.2조 공급계약, LG그룹과 결속관계 균열 가능성 주목

조영갑 기자공개 2021-04-28 13:21:08

이 기사는 2021년 04월 26일 13: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차전지 양극재 생산기업 엘앤에프가 SK이노베이션과 대규모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경쟁사 중 처음으로 LG에너지솔루션(LGES)과 함께 듀얼(dual) 공급망을 갖추게 됐다. GS 계열로 오랫동안 사실상 LG화학의 독점 공급사 지위를 유지하던 엘앤에프가 SK이노베이션(SK이노)과 대형 공급을 맺은 것을 두고 업계에선 '홀로서기'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엘앤에프는 최근 SK이노와 1조2176억원 규모의 NCM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오는 5월 1일부터 2023년 12월 말까지다. 이번 계약물량은 SK이노가 헝가리에 증설하고 있는 2차전지 라인으로 전량 공급될 전망이다.

SK이노는 현재 코마롬(Komárom) 1공장에 이어 2공장을 증설하고, 약 120km 떨어진 이반차(Iváncsa) 지역에 대규모 3공장을 건설 중이다. 총 47.3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생산능력(CAPA)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초부터 업계 일각에서 엘앤에프-SK이노 간 양극재 공급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됐다. 그러나 LGES-SK이노의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 소송전이 격화되면서 정식 계약이 지연됐다. 두 회사의 분쟁이 타결되자마자 공급계약을 체결, 그동안 엘앤에프와 SK이노 간에 꾸준히 진행된 ‘물밑 접촉’이 결실을 거뒀다는 평가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말 LGES와 1조4547억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SK이노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3조원 규모의 잠재 수주잔고를 확보했다. 업계 라이벌인 포스코케미칼과 에코프로비엠에 비해 상대적 열세로 평가되던 수주 규모를 단번에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계약물량이 차질 없이 납품돼 매출계정에 산입된다고 가정하면, 엘앤에프는 매년 최소 1조원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의 경우 매출액 3561억원, 영업이익 1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SK이노에 공급하는 양극재는 이른바 'NCM523'으로 니켈 50%, 코발트 20%, 망간 30%로 구성된 소재다. EV용 대용량 배터리 소재지만, LGES에 공급하는 80%급 NCMA(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양극재와 비교하면 스펙과 가격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LGES 향 양극재가 테슬라(Tesla) 신모델에 적용될 하이엔드급이라면 SK이노 향 양극재는 이보다 스펙이 낮은 로우미들급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공급계약을 기점으로 그동안 엘앤에프가 LG그룹과 맺어온 사업적 결속력이 다소 느슨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LGES와 SK이노가 최근까지 소송을 진행할 정도로 앙숙이 된 상황에서 합의 직후 SK이노 향 공급계약을 발표한 것은 엘앤에프의 계산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LG의 둥지를 벗어나 독자생존의 길을 찾겠다는 의지라는 이야기다.

엘앤에프의 실질적인 오너 허제홍 전 대표(현재 새로닉스 대표)는 LG그룹 공동 창업주 고(故) 허만정 선생의 증손자다. 선친인 허전수 전 회장 대부터 LG디스플레이(옛 LG필립스LCD)에 LCD BLU(백라이트유닛) 등을 공급하면서 세를 키웠다. 2008년 이후에는 양극활 물질 기업으로 변모, LG화학(현 LGES)과의 거래를 통해 매출액의 대부분을 올렸다. 약 80% 수준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매출구조만 보면 ‘종속관계’와 다름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LG화학을 비롯한 소수의 배터리 메이커가 양극재 생산기업의 우위에 있었다면, 양극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재는 양극재 업체의 지위가 대폭 상승했다"면서 "엘앤에프 역시 그동안 LG화학의 양극재 공급기지 역할을 했지만, SK이노로 공급망을 확장함으로써 올해 둥지를 떠나 사세를 키울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SK이노를 지렛대로 LGES와의 공급가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는 생산능력 확장을 위해 최근 400억원 규모의 단기차입을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대구 신공장 건설을 결정하고,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유상증자 등을 통해 910억원가량을 확보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차입금을 활용해 대구 신공장의 LGES 생산라인과 더불어 SK이노 라인을 증설하는 방식으로 내년까지 연산 8만5000톤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하겠다는 방침이다. 단기차입금은 124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소재의 수요가 커지고 있는데다 LGES에 공급하는 제품과 SK이노에 공급하는 제품의 스펙이 겹치지 않아 동시 공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SK이노가 유럽을 거점으로 공격적으로 배터리 증산을 하는 상황이라 지속적으로 양극재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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