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5월 10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SK그룹의 무게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침없는 투자를 단행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사세를 확장하는 분위기다. 다른 기업이라면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울 법한 아웃바운드 메가딜도 척척 해내는 것을 보면 M&A로 커왔던 기업의 DNA는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SK그룹은 또 외부자본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M&A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PE 자금을 지렛대 삼아 과감한 투자와 인수에 나서는 모습에서 자본시장을 대하는 유연하고 관대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SK텔레콤이 ADT캡스를 인수할 당시 재무적투자자로 맥쿼리를 끌어들인 사례나 최근 마무리 된 티맵모빌리티 프리IPO, SK루브리컨츠 소수지분 매각 등 FI와 손을 맞잡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는 최태원 회장의 의중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이야기가 정설이다. 최 회장이 3~4년 전부터 사모투자펀드와 함께 일하는 것을 장려했고 계열사별로 다양한 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부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나 막연한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투자자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SK그룹이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손을 잡고 딜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트랙 레코드가 될 수 있다. 또 좋은 투자 회수 선례를 남길 경우 향후 추가적인 딜로 다시 손잡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상당수 PE들이 SK그룹과 연계된 딜을 따내려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그야말로 자본시장의 '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SK그룹은 투자자의 하방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방식의 딜 구조를 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익률이 약정된 콜옵션 등을 통해 투자자 지분을 되사주는 식이다. 펀드 출자자가 대부분 공공기관인 국내 PE업계 특성상 원금과 일정 수익을 챙겨갈 수 있는 딜은 더욱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본시장에 자주 손을 내미는 SK그룹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부 딜의 경우 업사이드가 막혀있는 구조를 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투자후 IPO(기업공개) 등을 약속하고 상장이 여의치 않다면 콜옵션으로 수익을 보장해줬으나 최근에는 일정 시점이 지나면 단순히 원리금 정도만 챙겨주는 방식으로 딜 구조를 설계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사실상 단기 대출과 다를게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그룹 입장에서는 최소한 원금 이상을 보장받으면서 그 이상의 업사이드까지 노리는 것은 투자자들의 지나친 욕심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률이 곧 성적표라 할 수 있는 펀드의 속성상 하방 안정성에 치우친 딜 구조만으로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겉보기엔 지분 투자처럼 포장돼 있지만 결국 SK그룹이라는 크레딧에 기댄 대출에 불과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상황은 풍부한 유동성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돈은 넘쳐나는데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SK그룹이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투자자들의 러브콜에 도취된 나머지 지나치게 더 나은 딜 구조에만 집착한 것은 아닌가 곱씹어 봐야한다.
보다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 딜을 성사시키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FI와의 파트너십이다. 사모투자펀드를 단순히 자금 조달의 창구 혹은 수단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상생을 위한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본시장 갑 SK그룹에게 필요한 것은 겸양지덕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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